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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금의 권리 지키자" … 합리적 산정 기준 논의 활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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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 서교동 롤링홀에서 열린 상가 권리금 피해자 돕기 자선공연에서 민주당 민병두 의원(오른쪽 둘째)이 자신이 대표 발의한 ‘상가권리금 약탈방지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1일 저녁. 서울 홍익대 앞 작은 공연장에 관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비니’ 모자를 눌러쓴 10대에서부터 초등학생 아이의 손을 잡은 30대 주부,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까지. 젊은이들 일색인 여느 공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나이도 외모도 차림새도 다른 관객들의 손에는 흰 봉투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입장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봉투를 공연장 입구에 놓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기부함에 넣었다. 관람료를 자율 기부금으로 대신한 것이었다.

오후 8시. 이날 공연을 주최한 인디 록밴드 ‘신가람 밴드’의 리더 신가람(32)씨가 무대 위에 올랐다. 신씨는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신가람 밴드’에 이어 ‘로맨틱 펀치’‘크라잉넛’ 등 홍대를 대표하는 밴드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이날 공연은 상가 권리금을 떼일 위기에 처한 홍대 앞 ‘곱창포차’를 돕기 위해 마련됐다. 25년 동안 돼지곱창 가게를 해 온 ‘곱창포차’ 사장 최병열(54)씨는 2011년 보증금 1억원, 월 임대료 700만원에 2층 건물을 2년간 임차하고 ‘곱창포차’ 본점을 열었다. 이전 세입자에게 준 권리금만 1억5000만원, 인테리어 비용도 2억원이나 들었다. 전 재산인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돈을 마련했다.

조금씩 단골을 늘려가던 ‘곱창포차’가 위기를 맞은 건 2011년 11월, 건물주가 바뀌면서였다. 최씨는 “새 건물주가 임대료를 월 1100만원으로 올리든가, 아니면 가게를 비우라고 했다”고 주장한다. 최씨는 권리금과 시설비용 3억5000만원 가운데 5000만원이라도 보상해 달라고 소송을 냈지만 건물주는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 달이면 법원이 제시한 조정기간도 끝나지만 건물주는 ‘한 푼의 권리금도 보상해줄 수 없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는 게 최씨의 설명이다.

공연을 기획한 신씨도 비슷한 처지다. 홍대 앞을 무대로 밴드활동을 해오던 신씨는 2012년 홍대 인근 단독주택 반지하를 빌려 주점을 차렸다. 권리금과 시설비, 보증금으로만 1억원가량이 들었다. 하지만 개업 7개월 만에 건물주가 바뀌면서 월세를 배 가까이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신씨가 응하지 않자 건물주는 건물을 비워달라는 ‘명도소송’을 냈다. 신씨는 “권리금을 날릴 상황에 처하자 홍대 앞에 비슷한 피해 사례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며 “홍대의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문제를 알리기 위해 공연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곱창포차’ 사연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수십 년 묵은 ‘권리금’ 관행을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21일 공연은 SNS상에서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공연장에서 만난 한새별(24·여)씨는 “SNS에서 소식을 듣고 공연장에 왔다”며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도 보고 기부금도 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객석 뒤편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강욱천(52)씨도 “아는 가수들은 없지만 나도 장사를 해 본 적이 있어 세입자들의 입장을 잘 안다. 끝까지 공연을 보고 갈 생각”이라고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권리금 시한폭탄
‘권리금(權利金)’은 기존 세입자가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에게 점포의 고객과 영업가치를 이어받는 대가로 받는 돈을 말한다. ‘권리금’으로 통칭하지만 유형에 따라 ▶바닥권리금 ▶시설권리금 ▶영업권리금 ▶이익권리금 등으로 나뉜다.

바닥권리금이란 역세권과 같은 입지조건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것이다. 시설권리금은 점포 인테리어 등 시설투자에 대한 가치이며, 영업권리금은 브랜드가치나 영업노하우, 신용도 등과 관련돼 있다. 이익권리금은 앞으로 창출될 이익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상가를 매입하거나 임차계약을 맺을 때 관행적으로 주고받는 권리금은 현행법상 인정되지 않는다. 수천만~수억원씩 거래되는 권리금이 법적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이다. 법외(法外)거래이다 보니 건물주(임대인)와 세입자(임차인) 간 분쟁의 불씨가 되는 경우가 잦다.

원칙적으로 권리금 거래에서 건물주는 당사자가 아니다. 기존 세입자와 새로 오는 세입자 간에 주고받는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리금에 욕심을 낸 건물주나 권리금 수수료를 노린 기획부동산업자가 개입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계약이 끝난 세입자가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다. 일부 건물주는 새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받아 챙기거나, 직접 같은 업종의 가게를 차려 이전 세입자가 일군 ‘영업가치’를 가로채기도 한다.

권리금은 건물주가 월세를 올리는 수단으로도 악용된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만난 사장 김모(49)씨는 “권리금은 ‘폭탄 돌리기’다. 언제 누구 손에서 터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씨가 처음 식당을 연 것은 2년 전.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오자 건물주는 임대료를 두 배 가까이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권리금을 떼일까 전전긍긍하는 세입자의 심리를 악용해 주변 건물주들이 담합해 임대료를 인상하려 한다는 게 김씨 주장이다. 그는 “건물주들이 중개업자들과 짜고 권리금을 ‘인질’ 삼아 월세 올리기에 나섰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근거 없이 정하는 바닥권리금 문제
권리금을 법 테두리 안에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96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천정배 의원 등이 ‘점포임대차보호법’을 발의해 권리금 법제화를 시도했다. 2000년 한나라당 이재오·이주영 의원도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이번 정부 들어 권리금 제도화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권리금을 떼인 서민 피해가 늘고 있는 데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권리금 법제화를 지지한다는 이유에서다. 서 장관은 연세대 교수 시절인 2012년 한 경제지에 ‘상가 권리금 법제화 서두르자’란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칼럼에서 “권리금은 법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합리적 산정 기준이 마련된 것도 아니며 사기 등 불법 행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며 “소유권이 보장되듯 권리금도 같은 차원에서 보장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민병두(서울 동대문을) 의원은 지난 16일 ‘상가권리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른바 ‘상가권리금 약탈방지법’이다. 이 법안은 ▶권리금 계약서 작성 의무화 ▶임대인의 임차인 권리금 지급 기회 보장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지급하지 않고 동일업종 영업을 할 경우 손해배상책임 부과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김준옥 한국감정평가협회 기획이사는 “영업, 시설권리금과 달리 이른바 바닥권리금은 자의적으로 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표준화해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권리금을 제도화했을 때 건물이나 토지가격을 상회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어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박성의 인턴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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