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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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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고대 그리스인은 밤(율)을 많이 먹었다. 밤의 학명 castanea도 그리스어이다. 이 말은 라틴어를 거쳐 스페인어로 전화되어 「카스터네트」가 되었다. 스페인의 유명한 민속악기인, 딸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캐스터네트는 여기서 유래한 이름이다.
샤텡(불), 체스너트(영) 등으로 불리는 밤은 유럽 어디에나 있다. 고 퐁피두 대통령의 향리인 오베르뉴 지방은 깊은 산지여서 주민들은 옛날엔 밤을 주식으로 먹고살았다. 마른 모래(건사) 속에 밤을 묻어 두면 오래 저장할 수 있었다. 프랑스 농가에선 아직도 늦가을엔 버터와 치즈를 바른 밤알을 저녁으로 먹는다. 푸리니 시대(BC 79년) 로마엔 8종의 밤이 있었다. 파리의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들은 대부분 이탈리아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로니에 잎사귀에 단풍이 들 무렵이면 성급히 군밤집으로 바뀐다.
마론·글라세(marrons glaces)는 프랑스의 이름난 명과. 큰 밤알에 꿀을 묻히고 거기에 설탕을 얹었다. 명산 몽블랑의 모습을 본떠서. 하얗게 입힌 설탕은 산정의 설경을 연상한 것이라고 한다. 한 알에 40원(20센트)이나 하는 고급 과자이다.
우리 나라에도 밤단자(율단자)·밤떡 등이 있다. 지금의 어설픈 문명 생활은 그런 구수한 향토적 풍미들을 말끔히 잃어 간다. 이젠 상상 속에서나 입맛을 돋울 뿐이다. 중국 사람들은 시문 속에서 「율」자를 즐겨 읊는다. 율곡·율산·율중 등 자호의 운치를 돋우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동양인은 그만큼 격조 높은 열매로 친 것이다.
기록을 보면 미국에 이식된 밤나무는 중국의 것이다. 1853년에 처음으로 옮겨져서 토착화되었다.
밤은 영양가도 비교적 높다. 100g당 180칼로리. 단백질·탄수화물·지방질·무기질·비타민 등이 골고루 들어 있는 알칼리성. 따라서 인체의 신진대사에도 좋다.
이른바 유실수 중에서도 밤나무를 가장 유망한 수종으로 꼽는 것은 이런 특성들 때문이다. 밤나무는 섭씨 12도의 등온선을 중심으로 난대 중부에서 온대 북부에 걸쳐 잘 자란다. 우리 나라의 밤나무는 일본의 품종보다 야생성이 강하다. 산지 재배도 가능하다. 이런 밤은 감미와 향미에서도 앞선다.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수익성은 그 어느 수종보다 높다. 리기다 송의 10배. 가령 밤나무의 수익률을 100으로 할 때 리기다 송은 11, 쌀은 50, 보리는 13. 이른바 버려진 상대 임야2백만 정보를 밤나무 단지로 개발한다면 그만한 넓이의 전답을 얻는 것보다 더 낫다.
국제 시장엔 이탈리아와 일본의 밤이 많다. 동남아 일대에선 중공산이 때때로 덤핑된다.
풍토가 좋은 우리 나라의 밤은 말하자면 다크·호스가 될 수도 있다.
충해가 문제다. 내충성의 품종 개량은 어느 정도의 진전이 있는지 궁금하다.
식수의 계절과 함께 경제적 조림의 한가지 일화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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