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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의 대미평화협상 제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괴는 한국휴전협정에 대체할 4개항 평화협정체결을 직접 협상하자고 25일 미국에 제의했다. 북괴는 때마침 열리고 있는 이른바 최고인민회의에서 이 같은 미·북괴 직접 협상제안을 채택, 그것을 미국 행정부 아닌 미 의회에「공한」을 통해 제의한 것이다. 북괴의 이 같은 제의는 얼핏「평화」를 가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용을 정사해 보면 저간의 북괴행동 및 종전의 주장과는 전혀 전후가 맞지 않는 모순투성이 라는 것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 주목해야 할 점은 대한민국을 완전히 젖혀놓고 그 혈맹인 미국에 직접 협상을 제의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북괴의 이 같은 제의는「워터게이트」사건 등으로 유발된 제반 사태로 그 정치적 입장이 극도로 약화돼 있는「닉슨」대통령의 정부를 젖혀놓고, 이른바 고립주의적「비둘기」파들의 입김이 득세하고 있는 의회에 제의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일이다.
또 한가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저들의 이 같은 제안이 어쩌면 공산권내 그들의 종주세력인 소련과 중공의 작용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소·중공 3대 강국 사이에 싹튼「데탕트」기운의 지상 목표가 어떤「어프로치」에 의해서든간에 전면전쟁, 다시 말하면 승자도 패자도 없을 핵전쟁을 막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자는 데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할 경우 한국과 더불어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미국과 북괴와 유사한 동맹관계에 있는 소련 및 중공이 6·25때와는 다른 차원에서 개입, 정면충돌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때문에 소련과 중공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발발을 원치 않는다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재발 가능성 배제와 평화적 안정구축에는 공통된 이해 관계를 가졌다는 추리는 무리가 아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만일 소련과 중공의 대 북괴압력설이 상당한 근거를 가진 것이라면 북괴의 협상제의 자체는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소련과, 중공 및 미국을 포함한 3대 강국의 이번 북괴제의에 대한 반응 여하는 다른 각도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하나의 전환점을 가져올 소지도 있는 것이다.
다만 가소로운 것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른바「주체」의식을 강조하고 한국문제에 대한 내정간섭을 말라고 행세해 온 북괴가 그들의 적국 미국에 대하여 한국을 제의하고 분단한국 문제해결을 위한 협상을 갖자고 제기한 뻔뻔스러움이라 하겠다. 따라서 미국무성대변인이『한국문제는 남북한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못박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면서도 통쾌한 응수이다. 왜냐하면 그가 분명히 지적했듯이 이번 제안은 조금도 새로운 것이 아니요, 이미 1년 전인 73년4윌6일 그들이 미 의회에 제의한바 있었으나 대답조차 받지 못한 낡은 위장 평화공세의 재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북괴가 한국 휴전협정에 대체하기 위한 전쟁상태의 종결협상을 형식상으론 결코 협정 당사자가 아닌 미국에 제의한 것도 절차상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임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실로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평화통일 여건의 조성을 위해 그 전제조건이라 할 남북대화마저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그들의 입에서「평화협정」운운의 제안이 나왔다는 것은 너무도 속이 들여다보이는 술책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실효는 어떻든 간에 그들의 이번 제안이 제3세계를 비롯하여 세계여론에 주는 영향은 불소할 것이며 당연히 29차「유엔」총회에서의 끈덕지고 치열한 공세를 예측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차제에 이미 작년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휴전협정대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동시에「유엔」총회에 대비하여 각종 유연성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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