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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진출의 첨병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아부다비=박동순 특파원】「걸프」만 연안에 자리 잡은 인구 불과 30여만의 소국이며「아랍토후국연방」의 수도이기도한「아부다비」의 밤은「아랍」세계 답지 않게 어딘가 어슴푸레하게나마「환락의 자취」가 배어들어 있다.

<걸프만의 트리오>
이곳의 1급「레스토랑」「에완」(EWAN)은 밤12시부터 시작되는「쇼」가「하일라이트」. 요사스런「팡파르」와 함께 무대에 비춰진 조명 속에 떠오른 3명의「쇼·걸」은 뜻밖에도 한국아가씨였다.
나비 만한 크기의「브러지어」와「비키니·팬티」가 간신히 비 부를 가렸을 뿐인 이들 「트리오」는 노래와 춤으로 약 30분을 끌어간다.
「쇼·걸」의 육체가 묘한 율동을 보일 때마다 기자를 초대해 준 앞자리의「레바논」상인녀석이 눈을 찡끗한다. 그래서 그런지 둘레를 살피니 숱한 취객들의 시선이 아래로만 쏠려 있는 느낌이 자꾸만 든다.
본 기자가 첫 입국했을 정도로 한국인에게는 먼 세계였던 이곳까지 침투해 들어온 이들「쇼·걸」의 상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월남전쟁에 편승, 해외진출이 시작된 한국인「쇼·걸」들의 서진 작전은 중동에까지 그 발길을 뻗어 간 것이다.

<테헤란의 옥 마담 50명 쇼 단 이끌어>
그러나 이들 뿐만이 아니다.「테헤란」에는 옥「마담」이라 불리는 여걸이 이끄는 50여명의「쇼」단이「테헤란」의 밤을 누비고 있다.
그리고 중동제일의 아름다운 도시「베이루트」의 국영「카지노」는 전속「밴드」가 한국인. 4형제와 맏형의 처 이렇게 5명이 연주와 노래로「카지노」의 밤을 끌어가고 있다.「베이루트」에는 이 밖에도「나이트·클럽」에 한국인「쇼·걸」이 여럿 있다. 통틀어 중동지역에 60∼70명은 될까. 이들은 모두가 옥「마담」과 그 시동생이 계약을 맺어 주는 대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공연을 하고 휴게시간에는「호스티스」역까지 아울러 해치우고 있다.
「아부다비·힐튼·호텔」의「로비」에 앉아 있는데 어딘가「매너」가 허해 보이는 일본인인 듯한 6명이 들어서는데 그중 한사람의 골격이 왜 그런지 자꾸만 시선을 끈다.

<고독에 우는 선원>
이들도 기자를 보고 일본인인줄 알았는지 인사를 건넨다. 한국인이라니까 뜻밖에도 특이한 골격을 한 사람이 반가이 다가온다. 부산시 영도구 영선동 3가8번지에 산다는 한국인 선원 김형숙씨(46세).
김씨는 일본「유니언·탱커」회사의 잡역선(work boat)의 잡부로 채용되어 이곳에 온지 1년7개월 째라는 얘기다.
선원은 선장을 포함해서 일본인 7명,「아랍」인 4명, 그리고 김씨 등 도합 12명. 일본계인 「아부다비」석유회사에 용선 되어 대형선박예인, 자재운반, 각종항해시설유지·보수작업을 해 왔다는 김씨는 하루l0시간정도의 일이 고된 것도 그러려니와 가끔가다 입항하는 외항선의한국인선원을 만났을 뿐 공관도 한국인주재원도 없는「아부다비」가 외로와 견딜 수 없다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일인과 차별대우>
처음에는 채용된 한국인이 4명. 이중 2명은 계약기간 1년을 끝내자 귀국해 버렸고 김씨와 또 한사람, 다른 배를 타고「걸프」만 연안을 떠돌아다니는 이성렬씨(41세)만 다시 1년을 연장, 지금까지 일해 오고 있다는데 월급은 배 안에서 숙식을 제공하고서 초기에 2백「달러」, 지금은 3백35「달러」정도.「보너스」도 없다는 얘기다. 작업량과 선원경험 등을 비교해 보니 일본인 선원에 비해 대우가 박한 것 같다.「테헤란」에서는 우연히 기자를 자기 집에 초대한「이란」인 농장주「바이트」씨의 스물 남짓한 딸이『우리 회사에 한국인이 많이 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이란」공군의 항공기정비와 통신시설·운영업무를 맡고 있는「이란·에어크래프트·인더스트리」의 정비통신기술자들이다.

<이란에 교포 3백 명>
이튿날 조사해 보니「이란」에는 예상외로 한국인기술자들이 많다. 총 수가 80명 정도. 그 가족을 포함한「이란」의 교포 수는 3백여 명. 교민회장은 6년 전에「병아리감별사 첫 해외진출」이라는 표제로 떠들썩하게 보도된 일이 있는 이기소씨. 기술자의 내용은「이란·에어크래프트」통신 22명, 정비12명, 미국계 통신시설회사인「필코·포드」에 18명. 역시 미국계열인「페이지·코퍼레이션」의 정비기술자 23명, 그리고 병아리감별사가 4명이다. 월급은 가구 달린 주택과 6백「달러」. 1년에 한번 가족동반 귀국휴가 (비행기 값 포함)를 준다. 이들의 일부는「이란」공군의 통신기술훈련까지 맡아 하고 있는데 아직도 통신분야에서는 더 진출할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참고로「필리핀」기술자는 무려 1만8천명-.

<사업하는 형제도>
한국이 이들에 뒤떨어지는 이유는 복잡하고 긴 여권 수속 때문이란다.
이밖에도「쿠웨이트」에는 중동지역에서 대학을 나와 그대로 눌러앉은 위장희씨 형제가 사무실을 설립해 놓고 이를 거점으로 중동 각 국을 상대해서 맹활약 중이며「사우디아라비아」의「제다」에서는 양준석씨가 5년째 무역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공관보다 앞질러 이 지역에 진출한 이들 한국인들은 뭐니뭐니해도 한국의 대중동작전의 첨병들-.
이제야 뒤늦게 몰려들기 시작한 본국으로부터의 공무원·상사원들의 홍수에 그 동안의 고생이 빛을 보게 됐다면서 반가운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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