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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 관두고 59세 새내기 변호사 된 오세범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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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금의환향(錦衣還鄕)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죠.”

 20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제43기 사법연수생 수료식을 마친 직후 새내기 변호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오세범(59·사진)씨가 한 말이다. 성취감보다는 합격을 위해 노력했던 지난 세월의 의미가 먼저 떠오르는 듯했다.

 법무법인 다산의 사무장으로 근무했던 오씨는 2011년 12월 발표된 사법시험 53회 합격자 706명 중 최고령자였다. 이후 2년 동안 어린 친구들과 함께 이론과 실무를 배웠고 조만간 옛 일터인 다산에 합류한다. 이번엔 사무장이 아닌 변호사 신분이다.

 오씨는 이날 “마치 친정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라며 “출세해서 고향으로 화려하게 돌아간다기보다는 묵묵히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게 결실을 맺은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런 정신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씨의 삶에는 곡절이 적잖았다. 1974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할 때만 해도 전도가 유망했다. 하지만 4학년 때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소 이후 보일러공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일하던 직장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다가 해고됐다. 회사를 상대로 해고무효소송을 하는 동안 2년여가 흘렀다.

90년 전환점이 찾아왔다. 김칠준 변호사의 법무법인 다산 사무실에 사무장으로 일하게 되면서다. 오씨는 “나를 옭아맸던 딱딱한 법이 어려운 사람들의 실생활 문제를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을 지켜보며 새로 도전할 용기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97년부터 변호사 준비에 나선 그는 14전 15기 끝에 사시에 합격했다. 연수원 생활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젊은 동기들과의 체력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는 “7시간씩 한자리에 앉아 시험을 칠 때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다”며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팔굽혀펴기 100개를 하고, 4㎞를 달리며 체력을 길렀다”고 말했다.

  오씨는 다음 달 1일부터 다산으로 출근한다. 그는 “변호사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 때 찾는 마지막 보루”라며 “의뢰인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되는 게 내가 옮겨야 할 새로운 산(山)인 것 같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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