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양보 받겠다, 양보할 수 있지만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안철수 의원이 19일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초의원 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20일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여성인력개발센터 종사자들과의 토론회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 [뉴시스]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의 입에서 20일 동시에 ‘양보론’이 나왔다. 하지만 ‘양보’의 의미는 서로 달랐다.

 박원순 시장은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내가 100번이라도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정치적인 시각과는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면서다.

안철수 의원이 이날 보도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번에는 (민주당에) 양보받을 차례 아닌가?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정치도의적으로”라고 말한 데 대한 답이었다. 안 의원의 주장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후보직을 양보하고, 지난 대선에선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한 걸 염두에 둔 말이었다.

 안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서울시장을 포함해) 모든 지역에 다 후보를 내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2월부터 늦어도 3월까지 대부분 후보들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양보론’에 대한 질문엔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며 함구했다.

 언뜻 보면 안 의원의 주장에 박 시장이 호응한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양측은 각각 ‘행간을 잘 읽어야 한다’고 했다.

 박 시장 측 핵심 관계자는 “박 시장의 양보 발언은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에 방점이 찍힌 것”이라며 “‘시민이 나보다 더 나은 후보라고 판단한다면 양보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측근인사는 “안철수나 박원순이나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이미지인데, 지금은 먼저 정치공학적 발언을 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며 “안 의원이 나눠먹기식으로 비춰질 수 있는 양보론을 꺼낸 건 실수”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 측 윤여준 새정치추진위원장은 통화에서 “민주당에 후보 양보를 요구한 게 아니다”라며 “야권 분열이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준다는 걸 경계한다는 의미로 ‘민주당이 양보할 차례’라고 강하게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가 더 이상 양보하기 어렵다는 의지를 보이고, 지난번 양보로 실망이 컸던 지지자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 시장은 자신보다 지지율이 높은 후보를 구할 수 있겠느냐는 자신감에서 한 발언이고, 안 의원은 이번엔 반드시 서울시장 후보를 내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란 설명이다. 안 의원의 경우 ‘자신이 추천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맞설 후보를 내는 건 자기부정’이란 논리에 대한 대응명분을 만든 측면도 있는 듯하다.

 ‘양보론’은 추후 있을지 모를 후보 단일화 논의에 대비한 포석일 수도 있다. 서울시장 선거는 박빙구도일 땐 ‘3% 싸움’이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얻은 3%(약 14만 표)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민주당 한명숙 후보의 표 차(2만6000표) 이상이었다. 만약 선거전에 돌입해 양측이 단일화 논의를 하게 된다면 안철수 진영은 박 시장에 ‘통 큰 양보’를 요구하고, 박 시장은 ‘인물론’을 내세울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소아·하선영 기자

3년 전 웃었던 안철수·박원순, 6·4지방선거 앞두고 기싸움
안 측 "어부지리 막자는 의미"
박 측 "안, 양보 언급은 실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