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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주베일 항만사업 수주, 40년 전 신화 이어가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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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1975년 2월 16일, 오일쇼크로 나라 전체가 시름에 잠겨 있을 때 중동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20세기 최대 역사(役事)라 불리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현대건설이 따낸 것이다. 수주금액만 약 9억3000만 달러로, 당시 우리 국가 예산의 30%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였다. 이때 중동에 뿌려진 건설 한류(韓流)의 씨앗은 이달 2일 달성한 ‘대한민국 해외건설 누적수주액 6000억 달러’란 결실로 이어졌다.

 이후 중동지역은 오랫동안 우리 기업의 최대 플랜트 수출시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유로화 약세가 장기화하면서 최근 유럽계 건설사들이 중동시장을 공격적으로 공략하는 탓에 우리 기업들이 예전처럼 경쟁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해외 발주처들은 플랜트 입찰 참여자에게 사업수행에 필요한 자금조달까지 요구하고 있다. ‘선금융 후발주’ 방식의 입찰이 보편화된 것으로, 금융조달 능력이 해외수주의 성패를 좌우하는 주요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의 플랜트 시장은 일본·중국·미국 등 주요 경쟁기업들이 자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양질의 금융지원을 토대로 국가대항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수출입은행이 ‘기업의 수출입 자금 지원’이란 전통적 업무 외에 ‘금융자문·주선’이란 고부가가치 금융서비스를 도입한 주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금융자문 및 주선에서 대규모 자금 지원에 이르기까지 우리 기업의 해외사업 추진에 필요한 서비스를 일괄 제공하는 ‘패키지 금융지원 체계’를 갖춘 셈이다.

금융자문은 사업주가 플랜트 입찰 참여를 준비하는 사업 초기단계부터 사업구조 설계, 사업타당성 검토, 자금조달계획 수립, 프로젝트 계약서 및 금융계약서 협상 등을 지원하는 업무다. 한마디로 전문화·구조화된 금융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으로 해외 프로젝트 지원 경험과 노하우, 전문성 등이 총체적으로 융합되지 않으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영역이다.

 최근 우리 기업들은 단순 건설공사 수주를 통한 수익창출의 한계를 절감하고 지분출자, 플랜트 시공 및 운영, 제품 구매 등 사업 전반을 아우르는 고부가가치 ‘투자개발형’ 사업 기회를 활발하게 모색하는 중이다. 그만큼 투자 리스크 경감과 사업 수주를 위해 ‘금융자문’ 업무에 대한 요구가 날로 증대되는 상황이다. 또한 사업 규모가 확대되고 구조도 복잡해지면서 단일 금융기관의 지원으론 성공을 담보하기 힘들어진 만큼 ‘금융주선’에 대한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선진국 수출신용기관 및 국제금융기구, 국제상업은행으로부터 양질의 자금을 조달해 전 사업기간에 걸쳐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필요성에서 출발한 금융자문·주선업무는 국내 금융기관들이 해외 프로젝트 금융시장이란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껏 국내 상업금융기관들은 대규모 해외 플랜트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부족하고 장기 거액의 외화를 낮은 금리의 경쟁력 있는 조건으로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아 참여가 쉽지 않았다. 이에 수은은 주요 시중은행과 ‘인력교류 프로그램’을 실시해 PF 노하우를 과감히 공유했고 ‘우선상환제도’를 고안해 이들 민간금융기관이 장기 외화대출에 따른 부담 없이 해외 PF 사업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지난해 9월 콜롬비아 교통시스템 수출사업과 올 5월 미국 LNG사업에 국내 시중은행이 대거 참여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정책금융과 민간금융 간에 이뤄진 최초의 ‘창조적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수출 규모는 1964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 지 불과 50년 만에 무려 5600배나 성장했다. 2013년 한 해 한국 무역도 3년 연속 무역 1조 달러 달성과 사상 최대 수출, 사상 최대 무역흑자를 달성했다. 이른바 ‘무역 트리플 크라운’으로, 독일·중국·네덜란드 등 세계를 통틀어 단 네 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숱한 난관을 뚫고 이뤄낸 소중한 결실이다.

수출 반세기 동안 세계시장에서 선배들이 피땀으로 일궈낸 성과를 토대로 ‘제2의 무역입국’을 달성할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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