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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과 밀가루 값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밀가루 값을 60% 인상함에 따라서 쌀값과의 균형이 깨져 양곡정책은 당분간 딜레머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밀가루 값이 인상됨에 따라서 쌀값이 더 오르리라는 예상이 지배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산지의 쌀 출하가 크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수매도 지지부진하다.
서울의 경우, 평소 하루에 9천 가마 이상이나 입하되던 쌀이 최근에는 5천 가마 선으로 떨어졌으며 1월중 정부 쌀 수매 실적은 불과 20만 섬 뿐이라 한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도시 쌀값이 정부공시 가격을 상회하게 되자 정부는 28일부터 보유미를 일제히 방출하여 쌀값 안정을 기하는 한편 고시가격을 어긴 미곡상을 철저히 단속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쌀값 당정에 열의를 보이는 것은 특히 도시소비자들을 위해서는 큰 도움을 주는 것이나 양곡 수급면에서는 적지 않은 문젯점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밀가루 값을 올림으로써 이제 쌀값보다 밀가루 값이 싸지 않게 되었음은 종래의 맥가율로 보아 분명해진 것이며 그 때문에 쌀값을 현재 선에서 억제하려 한다면 밀가루는 팔리지 않을 것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쌀값을 고시가격 수준에서 누르는 한, 쌀 소비는 촉진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때문에 곡종별 양곡수급 계획에 근본적인 차질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쌀 소비를 촉진해서 쌀 수급 관계가 나빠진다면, 정부미를 가지고 가을 수매기까지 가격조절을 지탱해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같은 사리를 지시할 때 쌀 소비 촉진 대책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깊이 검토해야 할 줄로 안다.
우리 국민의 식생활 관습으로 보아 맥가율이 매우 낮아도, 쌀 소비 억제 효과가 크지 않음을 인정한다면 맥가율이 높아진 지금 쌀 소비를 누를 효과적인 방법은 쌀값의 재조정을 통한 맥가율의 인하에서 찾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물론 쌀값의 재 인상으로 파급될 물가 요인을 결코 가벼이 볼 수는 없다. 또 지금 쌀값을 올린다면 중농 이하의 농민에게는 오히려 피해를 줄 것이라는 사실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문젯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쌀 소비를 촉진함으로써 파생될 문젯점을 고려한다면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문젯점을 감수함으로써 비중이 큰 문젯점을 회피하는 것이 난국을 현명히 이겨 나가는 방법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의 국제시세로 보아 톤당 7백 30달러 수준에 이르는 쌀을 우리가 어떤 경우라도 수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쌀 수매 가능성을 지금부터 배제할 수 있도록 쌀 소비를 계속 억제하기 위하여 쌀값을 다시 상대가격체계에 맞도록 조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곡종별 수급에 차질을 일으키지 않아서 쌀 수입을 회피할 수 있다.
지금 국제곡물 시세는 소맥수입에도 부담이 너무 커서 보리쌀 수입과 그 소비를 권장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데, 쌀 소비를 촉진하는 가격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합리적일 수 없다. 쌀값의 재조정은 지금의 물가조세로 보아 참으로 어려운 것임을 인정은 하지만, 보다 큰 손실을 자초하지 않으려면 불가피 한 것임을 깊이 검토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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