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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극화에 박차|「리비아」「튀니지」전격 통합이 노리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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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리비아」와「튀니지」의 전격적 통합 결정은 그동안「리비아」가「이집트」와 유지해 온 특별관계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으로「아랍」세계에의 다극화에 박차를 가했다.
69년「쿠데타」로 집권한 이래「아랍」권의 맹주가 되려는 야망을 위해「이집트」와의 통합을 꾸준히 모색해 온「가다피」「리비아」국가평의회 의장의 노력은「악랍」세계안의 급진파 청년층의 갈채속에서 단계적 진전이 이룩되는 듯 했으나 제4차 중동전을 고비로 갑자기 좌절되고 말았다.
70년「이집트」및「시리아」와 함께「아랍」공화국 연맹을 이룩한데 이어 작년 8월29일 「리비아」와「이집트」는 단일국가로 통합했다는 선언을 했으나 이것은 실질적으로는 통합노력의 후퇴였을 뿐이었다.
「가다피」의 극좌적「인민혁명」이 자국에까지 넘칠 것을 염려하여 즉각적인 통합을 꺼려온 「사다트」「이집트」대통령은「리비아」보다는「사우디아라비아」와 손을 잡아 석유무기화 전략을 구사하고 다른 한편으로「시리아」와의 결속강화 및「요르단」과의 복교로 동부전선을 형성하겠다는 대「이스라엘」장기전략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다트」의 전략은 곧 10월 전쟁으로 구체화했으며 그 개전 및 휴전과정에서「사다트」는「가다피」와 전혀 사전 상의하지 않았다. 더우기「사다트」의 휴전수락·평화회담 참석 등 유연노선은「가다피」의 격렬한 규탄을 유발, 「카이로」의 대사관격인『「리비아」사무소』까지 철수하는 사태마저 빚었다.
「사다트」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가다피」는 동쪽의「이집트」대신 서쪽에 있는「튀니지」「알제리」「모로코」등과의 통합을 모색해 왔으며 우선 1차로「튀니지」와의 통합에 성공한 것이다.
「리비아」와「튀니지」의 통합가능성이 처음 거론된 것은 72년12월. 「튀니지」의 한 집회에서「가다피」는 두 나라의 통합준비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부르기바」대통령이 『먼 장래의 목표일뿐 과학적·경제적 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던 양국의 통합이 갑자기 이룩되었기 매문에「악랍」진영안의 충격은 컸던 것이다. 「악랍」이 세계의 온건파인「부르기바」가 급작스레「리비아」와의 통합에 동의한 내막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부르기바」가「사다트」의 제4차 중동전 개전결정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것으로 미루어 대「이스라엘」전략에서「가다피」와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볼수 있을 것 같다.
5백만 인구의「튀니지」가 우유부국「리비아」와 통합을 한데는 그나름의 경제적 이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아랍」회교공화국 발족으로 통합의「모델」을 만듦으로써「아랍」권 단결의「심벌」을 삼아「아랍」이 세계에서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사다트」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려는 포석이라는 풀이가 유력하다.
통합이 실현되면 인구분포 및 연령·경험으로 보아 70세의 노독립투사인「부르기바」가 초대수반이 될 것으로 보이나 실제는「가다피」가 더 큰 발언권을 갖고 그의 대외적 지위 역시 한층 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반공·반미의「리비아」와 친미적인「튀니지」의 통합이 실현된다해도 그 전도가 결코 순탄치는 못할 것 같다. 많은「업저버」두 나라의 결합이「단명」일 것으로 점치고있다.
이들은 그 이유로 ⓛ「튀니지」는 56년 독립이래「모로코」·「이디오피아」와 같이 미국의 원조를 받았던 나라인데 반해「리비아」는 미군기지폐쇄·미국계 석유회사 국유화 등 미국의 영향력을 철저히 배제해왔고 ②「부르기바」는 회교의 전통에 비판적인 면을 갖고있으나「가다퍼」는 엄격한 회교도이며 ③무엇보다도 대「이스라엘」문제에서「부르기바」는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퇴를 조건으로 「이스라엘」의 승인을 내세우고 있는 반면「가다피」는「이라크」와 함께 중동평화회담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고있다.
「리비아」·「튀니지」의 통합이 현재로선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를 축으로 한「아랍」진영 지도체제에 큰 위협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이나 그 결속의 확산여하에 따라선 금후의「아랍」판도 내지 대「이스라엘」전열을 경화시킬 가능성을 크게 했다고 볼수 있다.

<지원당기자>

<양국현황>「리비아」-면적 1백75만9천 5백40평방km, 인구 2백 1만명, 수도「트리몰리」및「렝가지」. 16세기「터키」의 「오스만」제국 일부가 되고 911년「이탈리아」식민지를 거쳐 49년11월「유엔」에서 독립국으로 승인, 51년이후 왕제가 되었다가 69년「가다피」지휘의 군부「쿠데타」로 공화제가 됨. 서쪽 국경을「튀니지」와 맞대고 있다.
「튀니지」-면적12만5천1백80평방km, 인구 5백14만명. 수도「튀니스」. 역시「터키」의 속령이었으나 1881년「프랑스」보호령이 되고 56년8월 독립, 57년7월 주정을 폐지하고 공화제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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