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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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3일이나 지났다. 그동안 몇 번이나 『새해 복 많이 받으시오』라는 말을 들었을까?
떡국도 여러 그릇 먹었다. 흰떡이란 본시 종교적 식품이다. 그 정결한 색깔의 흰떡이란 무격의 새신과 경사의 양제에서 공물로 예부터 쓰던 음식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니 어지간히 마음이나 몸이나 깨끗해진 폭이다.
덕담도 적지 않게 들었다. 올해 덕담에는 왠지 돈 얘기가 많다. 돈이면 제일이란 생각에서인지, 아니면 돈걱정이 누구에게나 제일 크기 때문인지.
누구나 돈이 인간의 전부는 아니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돈 보다 더 소중한 게 하나 둘씩 줄어들어만 가고 있는 게 요새 세상이다.
그러니 『새해에 돈 많이 버십시오』하는 덕담처럼 듣기 좋은 것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뭔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 꿈이라도 한번 멋진 것을 꾸어 보자고 잠을 재촉해 본다.
첫 꿈을 잘 꿔야 한 해의 신수가 잘 펴진다고들 말하지 않았던가.
첫 꿈이란 사실은 정월 초하루의 꿈을 말하지 않는다. 초이틀에 꾸는 꿈이 진짜 첫 꿈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니까 아무리 초하루에 용꿈을 꿔도 소용이 없다. 또 3일째에 꾸는 꿈도 헛 꿈이다.
왜 초이틀의 꿈을 치는지 알만도 하다. 사람에게는 1백8개의 번뇌가 있다. 이것을 다 몰아내자고 제야의 종도 1백8번을 친 것이다.
그 많은 번뇌를 다 몰아낸 다음에 미처 숨도 돌릴 사이 없이 첫 꿈을 꿀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초사흘이면 너무 늦다. 이미 그 사이에 1백8개의 새 번뇌물이 사람들을 휘어잡고 있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말로 깨끗한 새 마음으로 새 꿈을 꾸려면 초이틀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꿈도 아무나 꿀 수 있는 건 아니다. 시역몽 비역몽, 이렇게 도통할 수 있는 사람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도 꿈이요, 비도 꿈이라는 뜻이다. 꿈꾸지 못하는 사람은 살 자격이 없다고 「에른스트·트라」가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꿈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던 「트라」도 끝내는 자살하고 말았다.
그러니 아무리 꿈이 좋아도 소용은 없다. 꿈을 꿀 능력이 있다고 해서 꼭 잘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집안에서나 할머니가 제일 꿈을 잘 꾸었고, 또 신통하게도 잘 들어맞는 꿈들이었다.
그런 신통력을 가진 할머니들이 이제는 어느 집안에도 없다.
그러니 아무리 꿈을 꾸겠다고 안간힘을 쓴다고 될 일도 아니다.
새 해가 떠 오른지 벌써 3일이 지났다. 시무식도 끝나고 사람들은 일손을 다시 잡았다.
꿈도 없이 말이다. 아무리 꿈이 있어도 소용은 없다지만 이가 빠진 새 해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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