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이라크서 세번 놀란 의원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라크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11~13일 바그다드를 방문한 한국 국회의원 네명은 사흘 동안 세번 놀랐다.

첫째는 "이곳이 전쟁 위험에 처한 나라 맞아?"하는 놀라움이었다. 시내 한복판에는 서울랜드급의 대형 놀이공원인 '바그다드 키드랜드'가 막 단장을 마치고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의원단을 초청한 사둔 하마디 국회의장의 집무실에서는 봄맞이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밤거리는 집에서 들고 나온 자국산 맥주를 홀짝이는 젊은이들로 흥청댔다.

둘째 놀라움은 이라크 사람들이 한국 사정을 꿰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의원단이 "쿠리(한국)"라고 대답하자 "남이냐 북이냐"고 물은 뒤 "남한은 미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텐데 어려운 걸음을 해줘 정말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셋째는 사담 후세인 철권통치의 철저함이었다.

의원단이 "후세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젊은이부터 노인까지 "지난해 10월 전국민이 참여한 자유투표에서 1백% 지지율로 당선된 합법적 지도자"라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대답했다.

경직된 국가관만 빼면 이라크인들은 한국인 이상으로 '정(情)'이 많고, 자긍심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11일 밤 아사트 거리의 피자집에서 바그다드대학 학생들과 합석해 이야기를 나눈 송영길 의원(민주당)이 일어나면서 지갑을 꺼내들자 학생들은 "벌써 계산했다"며 "다음엔 집에서 대접할테니 꼭 다시 오라"고 환하게 웃었다.

"후세인이 독재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축출은 이라크인들이 할 일이지 미국이 나설 일은 아니다." 여야 의원 네명의 일치된 결론이었다.

강찬호 국제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