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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어린이 5명 입양 '사랑의 왕' 로버트 킹 지다

미주중앙

입력

두다리 없이 태어나 버려진 애덤 킹을 한국에서 입양하는 등 9명의 자녀를 가슴으로 품었던 로버트 킹씨가 암투병중 사망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숨진 킹씨와 대학생이 된 최근 애덤, 애덤을 `철각소년`으로 알린 2001년 한국프로야구 개막전 시구장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 여사와 애덤, 시구 후 기념촬영. [사진제공 킹씨 가족]

마운드를 지켜보던 아버지는 끝내 울었다. 두 다리가 없는 아들이 의족에 의지한 채 3만 관중 앞에서 씩씩하게 시구했다.

공은 원바운드로 포수 미트에 도달했다. 썩 훌륭한 시구는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마운드 위에 올라가 아들을 꼭 안으며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항상 들어도 기분 좋은 그 말을 아들은 지난 7일 마지막으로 들었다. 2001년 4월5일 프로야구 개막식에서 대한민국 온 국민의 가슴에 희망구를 꽂은 '철각소년' 애덤 킹(22)의 아버지 로버트 킹씨가 사망했다. 61세였다.

7년 전 한차례 이겨냈던 간암이 지난해 7월 다시 재발했다.

킹씨는 "삶을 정리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은지 나흘만에 눈을 감았다. LA에서 동쪽 60여마일 떨어진 모레노밸리 자택에서 가족들이 그의 곁을 지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킹씨는 네살 난 애덤을 한국에서 입양했다. 양 다리가 없고 손가락이 붙은 채 태어나 친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였다. 세 번째 입양이었다. 킹씨의 자녀는 12남매다.

그중 9명이 입양아고, 8명이 애덤과 같은 장애아며, 5명이 한국 아동들이었다.

12일 애덤과 통화가 됐다. 대학생이 된 애덤은 "평온하게 눈을 감으셨다"고 아버지의 부고를 덤덤히 전하려 애썼다. 하지만 "아직 멍(numb)하다. 아버지가 잠깐 여행가신 것 같다. 금방이라도 '아들, 아빠 집에 왔다' 하실 것 같다. 많이 보고 싶다"고 아파했다.

애덤의 시구 후 킹씨 부부를 한국 언론들은 앞다퉈 취재했다.

특히 98년 김대중 전 대통령 방미시 이희호 여사가 애덤과 킹씨 부부를 만나 모국 초청을 약속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의 관심은 쏟아졌다.

'사랑의 화신', '살아있는 예수님'이라는 별명이 킹씨 부부에게 붙여졌다. 당시 김원길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킹씨 부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버림받은 아이를 품어준 킹씨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다"고 존경을 표했다.

그로부터 13년 후, 킹씨의 뒤늦은 부고는 '한인으로서' 그때보다도 더 부끄럽다.

정작 킹씨에게 필요했던 관심은 필요한 순간에 사그러 들었다. 컴퓨터 엔지니어였던 그는 암이 재발하기 얼마 전 회사 사정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살림살이는 어려워졌다.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장애 자녀가 8명이다.

하지만 주위에 손 한번 벌리지 않았다. 얼마 안 되는 예금과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했다.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애덤은 "아버지의 뜻을 잘 모르지만, 아마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원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가장의 빈자리는 남은 가족들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을 뜻한다. 한국입양홍보회(MPAK)의 최석춘 회장은 "킹씨는 조건없는 사랑실천으로 장애아와 입양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분"이라면서 "한인 사회에 부탁하고 싶다. 천사 같은 킹씨 가족들을 도와달라"고 했다.

킹씨는 지난 2000년 한 언론에 애덤의 아버지로서 이런 말을 남겼다. "뱃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 없듯 장애아인지 아닌지는 부모의 선택이 아닙니다. (장애를 견딘)용감한 아이들의 부모라서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눈감기 전 그의 유언은 짧았다. 자랑스러운 애덤과 자녀들에게 "항상 사랑한다"고 했다.

장례 예배는 19일 오후 3시 모레노밸리의 디스커버리 크리스천 처치(Discovery Christian Church·27555 Alessandro Blvd. Moreno Valley, CA 92555)에서 열린다.

▶도움 주실 분들:(562)505-0695 한국입양홍보회(MPAK) 회장 최석춘

정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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