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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씨 빈소에 조객들 줄이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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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평생동안 낚시를 즐겼던 노정객 동은 이재학씨 (70)가 23일 상오 9시30분쯤 이날도 낚시터에 가다가 서울 성동구 강변 6로서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60년 정계 은퇴 후 줄곧 낚시와 역사 관계 서적을 읽으며 소일해온 이씨는 이날 상오 8시30분쯤 종로구 동숭동 201의 7 자택을 출발, 「택시」로 잠실대교 밑 낚시터를 향해가던 길이었다.
40년 동안 틈만 나면 낚싯대를 메고 전국 곳곳의 낚시터를 찾았던 이씨는 최근에는 바다낚시에 심취해 주로 제주도 및 동해안 일대를 즐겨 찾았었다.
이씨는 이날도 지난 3년 동안 함께 낚시를 즐겨온 전 국회의원 예춘호씨와 상오 6시 인천에 가기로 약속했으나 날씨가 나쁘다는 이유로 이씨 자신이 가까운 낚시터에 가기로 계획을 변경, 두 사람이 잠실 낚시터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4·19후 인생과 정치의 무상함을 절감, 끈질긴 후배들의 정계 복귀 권유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의 유유자적한 취미 생활을 유일한 낙으로 삼아온 이씨의 거실안 벽에는 서예가 소전 손재형씨가 쓴 현판 「운소고상」 (조용한 구름처럼 높게 난다는 뜻)이 유유하게 걸려있으며 고인이 20년 동안 아껴온 돌 도미 낚싯대가 빈소 구석에 쓸쓸히 놓여있어 조객들의 슬픔을 더하게 했다.
이씨가 처음 낚시에 취미를 붙인 것은 40년전 충북 단양 군수 시절. 그뒤 이씨는 바쁜 정치 생활을 하면서도 멀고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고 다녀 경기도 전곡을 비롯, 전국에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재학 낚시터가 수두룩하며 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했을 당시에는 유세장에는 나타나지 않고 낚시터에 나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씨의 사생활도 강태공의 그것만큼이나 청빈·과묵했고 소탈했다는 것이 고인을 아는 사람들의 평이었다.
돈을 모르는 그는 가족들이 담장에 철망을 치는 것을 꾸짖어 막았으며 자택 내실에는 비가 새어 겨울인 지금에도 곰팡이가 끼여있을 정도 사고당시 호주머니 속에는 단돈 2백원이 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최근에는 「이승만 박사 일백세 (75년) 기념 사업」을 준비중이었다.
서울대「캠퍼스」와 이화장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고인의 35평짜리 자택에는 생전의 교우 유진오 박사·임철호·한희석·인태식·최헌길·구용서씨 등 옛친구들과 민관식 문교부장관·신도환 신민당 사무총장·홍진기 중앙일보 사장, 그리고 이날 낚시를 같이 가기로 했던 예춘호씨 등이 모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씨는 1929년 경성제대 (현 서울대) 문학부를 졸업한 뒤 강원도 학무국장 , 내무국장·강원 도지사 서리 등을 역임했고 48년5월에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60년7월까지 5선의원을 지냈으며 3대 국회 때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정수 여사 (67)와 장남 교선씨 (41·전 국회의원) 등 3남 2녀가 있다. 연락처 (72)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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