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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집행정지와 보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금년 1월부터 9월말까지 구속 영장에 의하여 구속된 사람은 8만9천8백45명이다. 이 중 8만4천8백45명이 처리되었는데 89%인 7만5천5백여명이 구속 기소되었다. 이 중에서 보석으로 풀려난 사람은 8백32명밖에 되지 않으며, 구속 집행정지 건수는 상당히 늘어나고 있다. 법무부는 보석 결정이나 구속 집행정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수형자에 대한 가석방의 기준은 앞으로 대폭 완화할 것이라 한다.
구속 영장의 요청 건수는 작년보다는 줄어든 것으로 보이나 그 대신에 영정 기각 건수도 줄어들고 있어 인신구속은 평년 수준이 될 것 아닌가 짐작된다. 과거에는 영장 발부에 대해서 구속적부 심사를 청구할 수 있었으나 금년초부터 구속 적부 심사제도가 없어져 그동안 잘 활용되지 않았던 구속 집행정지 제도가 이용되고 있는 것 같다. 구속 집행정지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만 할 수 있으며 피고인의 주거를 제한하거나 친족·보호단체 기타 적당한 자에게 부탁하는 제도인데 이것이 보석과 다른 점은 보증금을 납부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구속 집행정지 처분으로 석방된 사람들 중에는 반사회적 기업인으로 지목 받던 재벌 급 인사들이 섞여 있다고 한다. 이들의 구속 집행정지에는 물론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보석금 없이 석방됐다는 것은 사회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이들에게는 은행 거래 중지 등 제재 조치가 취하여졌기 때문에 보석금을 마련할 수 없다는 핑계가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들이 구치소 의무관들에게 진료를 받고 중증환자로 통보만 되면 구속 집행정지가 된다는 정을 알고 보속금을 떼이지 않고 쉽게 도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구속 집행정지 제도를 이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형사 소송법에는 필요적 보석제도가 규정되어 있어 피고인·변호인과 피고인 등의 법정 대리인의 신청이 있는 때에는 법이 열거한 특별한 경우가 아닌한 반드시 보석을 허가하도록 하고있는바 이 보석 제도의 운용이 잘되지 않고 있다는 감이 불무하다. 법원에 접수된 보석 청구 건수는 작년도의 4천6백27건의 47.6%인 2천4백26건 밖에 되지 않으며, 허가 건수는 작년의 1천9백29건에서 8백32건으로 56.9%나 줄어들고 있어 우려되고 있다.
보석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검사의 의견을 물어야 하며, 보석을 허가하는 결정과 구속을 취소하는 결정에는 검사가 즉시 항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보석 신청 건수와 허가 건수가 줄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원칙적으로 검사가 피의자를 구속 기소한 경우에는 증거의 수집이 완료되었다고 보아야할 것이요, 따라서 증거 인멸의 우려는 없다고 보아야 하겠다. 따라서 피고인이 도망할 우려만 없다면 원칙적으로 보석을 해 주어야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구속된 피고인이 원칙적으로 보석되는 이유는 피고인이 검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자기를 변호할 수 있도록 증거를 수집하고 무죄를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형사 소송법은 미국식인 당사자 주의를 도입하고 있으나 운용은 피고인에게 너무도 불리하게 행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구속 적부 심사제도의 폐지에 대해서는 왈가왈부도 많으나 작년 5월까지만 해도 공화당이 형사 소송법을 개정하여 인신보호 명령제도를 도입하려고 하였는데 이 제도나마 조속히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법원은 인신구속이 남용되지 않도록 영장발부를 좀더 신중하게 하여야 할 것이요, 일단 구속된 경우에도 보석 신청이 있으면 원칙적으로 허용하도록 해야한다. 특히 미성년자에 대해서는 구속 집행정지 제도를 활용해서 인신보호를 기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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