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노다 … "한국의 톱, 여학생처럼 고자질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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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요시히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일본 총리가 10일 “여학생처럼 고자질 외교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헐뜯었다. 이날 보도된 마이니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다른 외국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해양 진출을 노리는 중국을 견제하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는 질문에 노다 전 총리는 “한국의 톱(최고지도자)이 미국과 유럽에 가서 여학생처럼 ‘고자질 외교’를 하며 일본을 비판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인다”고 답변했다. 이어 “중국도 (일본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역시 정상들끼리 (회담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고자질 외교는 서로 그만두는 편이 좋다”고 덧붙였다.

 취임 후 외국 정상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과의 면담에서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강조해 온 박 대통령의 외교를 폄훼한 것이다.

 ‘여학생’이란 표현은 고자질을 일삼는 존재로 여성을 비하한 측면도 있다. 주일대사를 지낸 권철현 세종재단 이사장은 “총리를 지낸 사람이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상식 밖의 망언을 한 것이 놀랍다”며 “한마디의 망언이 얼마나 큰 치명상을 입히며 양국 관계를 무너뜨리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와 주일 한국대사관에선 “정치를 잘못해 정권을 넘겨준 패배자의 말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있느냐” “이웃 나라 정상을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수준이 낮다는 걸 보여 주는 것”이라는 불쾌한 반응들이 나왔다.

 노다는 아베 직전 총리이자 3년3개월간 유지됐던 민주당 정권의 마지막 총리다. 민주당인지 자민당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보수 편향적인 ‘자민당 2중대’ 정책과 편가르기로 민주당을 와해시켰다. 뜬금없는 소비세 인상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며 무리하게 국회를 해산해 결국 정권을 아베와 자민당에 헌납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그를 ‘실패자’로 낙인찍는 이유다.

 인터뷰에서의 문제 발언도 재임 시의 실패를 해명하다 나왔다. 중·일 관계를 더욱 꼬이게 만든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에 대해 “국유화는 결단” “도쿄도가 사는 것보다는 나은 결정”이라며 포장하던 와중이었다. 아베 총리를 비난하며 자신을 부각시키려다 엉뚱하게 박 대통령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여학생’이란 표현은 자위대원의 아들로 보수색 농후한 마쓰시타(松下) 정경숙 1기생임을 이력의 전면에 내세워 온 평소 태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제는 노다처럼 망언을 하진 않더라도 일본 정부나 정계·언론계 등 오피니언 리더층에 비슷한 생각이 많이 퍼져 있다는 점이다.

 사석에서 만난 일본 정부 관계자들 중엔 삐걱대는 한·일 관계가 주제에 오르기만 하면 “박 대통령이 외국 사람들 앞에서 일본을 욕하는 것만큼은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꽤 있다. 한국을 방문해도 박 대통령과 만날 기회가 워낙 없다 보니 지한파 의원들 사이에서도 “일본인은 왜 만나 주지 않느냐. 불만이 있으면 직접 일본인에게 표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하는 이가 적지 않다.

 9일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의 신년회에 참석한 일·한 의원연맹 회장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의원이 한국에 대해 “상대의 약점을 드러내 자신의 이익을 얻는 그런 잘못된 방법은 서로 그만두면 어떻겠느냐”고 말한 것도 이런 일본 내 기류를 반영한다.

 하지만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에 이어 노다의 느닷없는 망언 한 방으로 ‘양국의 상호 배려’를 강조하는 뜻있는 일본인들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게 됐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노다 요시히코(57)=아베 신조 총리 직전 1년3개월간 재임한 민주당 정권 마지막 총리다. 취임 후 재정 악화를 이유로 공약에 없던 소비세 10% 인상, 중국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열도 국유화를 내세워 일본 안팎으로 반발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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