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싫어하는 인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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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떤 집에 들어가 보면 손바닥만한 안마당을 온통 「시멘트」로 덮어 버린 것 을 종종 본다. 아예 흙이라고는 보기도 싫고 냄새도 맡기 싫다는 듯이 온 마당을 물 한방울 새지 못하게 「시멘트」확으로 만들어 놓고 조석으로 물을 부어 깨끗이 씻을 수 있는 것을 무엇보다도 만족스럽게 여기며 사는 모양이다.
안마당 쯤야 그 집주인의 취향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많은 시민들이 다니는 한길은 그리하여서는 안될 줄 안다. 그야 흙바닥을 그대로 두면 더럽고 먼지가 나며 비만 오면 진구렁이 되는데 자동차는 마구 늘어나는 세상에 어찌 그대로 둘 수 있느냐는 말은 백번 옳은 말이다. 그래서 서울거리는 뒷골목까지도 차차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여 가고 있다.
여러 천년 전의 「그리스」나 「로마」문명의 유물을 오늘날들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앞으로 몇 천년 후에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후손들이 어디서 찾아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이는 필경 「콘크리트」에서 알아볼 것이다. 서울의 유적에는 고가도로와 고층건물 동등이 즐비하게 남아 있어서 관광객들을 놀라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동경이나 「뉴요크」의 폐허에서도 마찬가지 광경을 볼 때 그들이 무엇이라고 할 것일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라면 그것을 자기 조상들의 문화유산이라고 받들고 자랑삼지는 않을 것이다. 「시멘트」문명이라서 반드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 떳떳이 불려 줄 우리문화가 아쉽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일전에 신문에서 어느 외국인이 현충사에 가서 정문에서 사당에 이르는 길이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 와서 『그렇게 비인간적인 직선을 본 일이 없다』며 『한민족의 정신적 유산은 고결한 것이며 결코 모욕당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역사에 길이 남아 빛날 성웅에의 접근을 막기라도 하듯이 저속한 서양문명이 이곳에까지 왜 끼어 들었을까를 통탄하며 한민족의 영혼이 스며 있는 박 같은 재료로 장식할 수는 없었을까 하고 안타까이 충고를 한 글을 읽고 낮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언젠가는 현충사에서 인간에의 애정이 스며 있는 길을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그렇게 되는 날 한국의 가을하늘은 더욱 푸르리라고 기대하며 그 얄팍한 서양문명으로 충무공의 정기 어린 모래알들을 모조리 덮어 버린 처사를 슬퍼하고 있다.
공해에 뒤덮이도록 서양문명을 들여온 일본에서도 그들이 신성하다는 신궁의 경내에는 「시멘트」문명의 침범을 허용하지 않고 정결하고 고운 자갈을 깔아서 흙내음이 그대로 스며 올라오도록 하고 있는 것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옛 조상들이 남겨 준 박의 소박하고도 아름다움은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리고 경망하게도 석굴암을 손보는데도 「시멘트」를 썼고 고분을 매만지는데도 「시멘트」를 바르지 않고는 못 배기는 후손들이 되고야 말았으니 앞으로는 어디를 가면 우리의 것이라고 자랑하며 내보일 것이 있을지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흙에서 살다 흙으로 돌아갈 인생이건만 그렇게도 흙을 모조리 덮어 버리고 「시멘트」바닥에서 「삶」마저 메마르게 굳혀 버리려는지, 한발한발 내디딜 때마다 띵하고 머리에 오는 울림이 그리도 달갑던지. 흙을 싫어하는 인간들의 갈곳이라곤 「콘크리트」밖에 더 있을라구. 【권영대<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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