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카잘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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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위대해지고 싶다는 꿈을 갖는 순간이 있다. 그런 꿈을 안고 한 평생을 지내는 사람도 있다.
위대해지기 위하여 권력을 모으고, 돈을 모으고 하는 사람들은 물론 많다. 구령 하나로 온 나라를 움직일 수 있으면 위대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끔찍한 경각이다. 위대한 인간이란 세속적인 저울대에 의해서 측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런 착각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나라나 시대가 움직여질 때는 이를데 없는 비극이 된다.
「카잘스」만큼 위대한 인물은 드물다. 「카잘스」에 관한 신화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위대하다고는 단 한번도 느껴 보지 못했는가 보다. 「카잘스」는 「첼로」주법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현대 예술가 중에서 그처럼 직관을 믿던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그가 위대하다는 것은 그가 음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서만은 아니다.
「카잘스」가 직관적 단순성을 끝내 버리지 않은 것도 그게 모든 사람의 가슴에 가장 잘 파고 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인간』에는 반드시 신념이 있다. 올바른 신념을 끝까지 지켜 나가려는 용기와 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위대성이 따르게 된다. 「카잘스」가 위대한 것도 바로 그에겐 이런 신념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에 예술가다. 인간으로서 나의 첫번째 책무는 나의 동포의 복지를 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굳게 믿고 있던 그에게 어느 친구가 물었다. 왜 당신은 예술가이면서도 정치에 관계하고 있느냐고. 예술가란 예술에만 전념하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여 묻기도 했다. 「카잘스」는 조용히 대답했다. 『예술만 하는 것도 좋지만 예술과 정치를 다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위대한 음악가도 많다. 위대한 정치가도 많다. 그러나 위대한 정치가라고 모두 위대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인간이란 그렇게 흔한 게 아니다.
「카잘스」는 조국 「스페인」을 버렸다. 그리고 「프랑코」 정권을 「스페인」내란 후에 시인한 나라들에 가서 연주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스페인」시절의 신분증을 끝내 간직하고 있었다. 모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남달리 강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프랑코」가 미웠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모국을 더럽혀 주고 있다는 뜻에서. 유명한 「트리오」의 한 사람이자 친우였던 「콜토」가 「나치」에 협력했을 때 그 배신을 다시없이 서러워했던 것도 같은 뜻에서였다. 이제 그는 갔다. 그런데도 그가 미워하던 것들은 아직 도처에 남아 있다.
▲고침=작일 본란의 『「스웨덴」한림원』운운은 『「노르웨이」의회 「노벨」상위』로 고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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