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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중희 특파원「헝가리」3박4일의 견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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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관광「버스」속.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잡다한 인종들이 꽉 들어찼다. 거의 모두가 비곗살이 디룩디룩한 중년층이고 젊은 층은 한 사람도 없다.
절대다수는 여기서도 동서양쪽에서 온 독일인들, 그리고 미국인에 이어 각색인종들이 뒤따른다.
차가 굴러가면서 안내가 시작된다. 언제나처럼 독일어·영어·불어뿐. 딴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활동사진 변사처럼 인심 좋은 안내역 아주머니의 우선 첫마디가 좋다. 『여러분이 지금 창 밖으로 내다보는「부다페스트」는 거의 대부분이 가짜입니다」

<「세계 제1」무더기 소개>
가짜라니 하고 귀가 솔깃한 손님들에게 청산유수로 일러주는 그의 설명인즉 이렇다.
2차 대전이 끝장을 내려 하던 l944∼45년 겨울, 「나치」독일군은 여기서 7주간을 버텼다.
처음에는 포격전, 나중에는 시가전이 치열하게 벌어진 이 7주 동안「부다페스트」시내의 무려 3만3천개소의 건물들이 잿더미로 화해 버렸다.
종전 후「부다페스트」사람들은 이 건물 하나 하나를 옛 모습 그대로 다시 복구시켜 놨고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다된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아닌게 아니라 창 밖을 지나는 건물들은「가짜」치고는 너무나 진짜답게 고풍 그대로다. 그리고 탄흔에 곰보처럼 얽은 건물들이 시내 여기저기에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이 건물들 가운데 일부는 혹시 56년「헝가리」반공폭동 때 곰보가 된게 아닌가 싶었으나「안내」여사로부터는 56년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버스」가 관광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성 언덕에 이르기까지 안내 여사는「부다페스트」자랑을 허물없이 늘어놓는다. 여기 지하철은「런던」지하철을 빼놓고는「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고, 「발라톤」호는 소련을 빼놓으면「유럽」에서 제일 크고「아그탤랙」자연동굴도「유럽」에서 제일 크고, 극장은「뉴요크」의「브로드웨이」보다 많고「토니·커티스」도「헝가리」태생이고 등등. 「버스」가「성의 언덕」에 닿지 않았던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세계 제1」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뻔 했다.

<중세사원·성당 수두룩>
「다뉴브」강을 안은「부다페스트」시가 어느 중세기의 한 폭의 그림처럼 언덕아래 펼쳐진다. 강을 가로지른 일곱 개의 다리들, 강변에 첨탑그림자를 떨어뜨리며 장엄히 앉아 있는「네오고틱」형의 의사당건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원·성당들, 그리고「바로크」, 중세「클래식」형의 대소 각종의 건물들. 「오스트로·헝가리」제국, 「합스부르크」왕조의 지난 영화의 꿈이「파노라마」처럼 장관을 이룬다.
『「헝가리」사회주의 인민공화국 수도「부다페스트』하기에는 광경이 너무나 왕조적이다.
안내원에 인솔되는「관광부대」는 다시 차에 올라 언덕을 내려온다.
다시 시내를 돌아 영웅의 광장으로 향한다. 어째 영웅들은 또 그리도 많은가? 거리마다, 광장마다 들어보지 못한 이름의 민족영웅들이 동상의 화신이 돼 지켜서 있다.

<너무 초라한「레닌」입상>
1849년 혁명을 영도한「라오스·코수트」, 독일의「프레드릭」왕성을 쳐부쉈다는「안드라스·하디크」장군, 1848년 독립전쟁 때 장렬히 쓰러졌다는「조르지·잘라」장군, 「오스트로·헝가리」제국창건에 공을 세운「프랑크·디아크」, 1456년「터키」군을 궤멸시켰던「야노스·후냐디」…장군도 많고 영웅도 많다.
그러나 공산화 된지 일천한 때문인가, 그중에「공산영웅」은 찾아보기 어렵다.
단 하나, 「도자·코르기」. 농민반란을 일으킨 죄로 생으로 화형에 처해진 반군영웅으로 추앙되고 있다.
또 하나 직접 관련은 없지만「레닌」입상이 서 있다. 그것도「헝가리」의 영웅상들에 비하면 어딘지 초라해 보인다.
민족의 슬기와 얼을 이런 민족적 영웅상들로 모셔 놓고 사는「헝가리」사람들에게「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부름에 어느 만큼의 현실적 박력을 갖는 것인지?
다시「호텔」속의 오전. 그 동안에 길어진 머리가 텁텁해 구내 이발점에 들어가 머리를 깎는다. 아침이 일러서 그런지 의자에 걸터앉아 당 기관지『인민의 자유』를 읽고 있던 예쁜 여자이용사가 혼자서 본 기자를 맞아준다.
의자에 앉으니까 그녀는 자기나라 말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리가 없다. 『동무, 머리를 어떻게 깎아 드리리까?』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가위로 쑹덩 자르는 시늉을 하며 아주 짧게 깎아 달라고 해본다. 그러자 그녀가보인 놀란 표정은 억지로 말로 고쳐 놓으면 이렇게 밖엔 고쳐 놀 도리가 없다-『아니 이동무가 더위에 머리가 돌았나?』할 수 없이 그저 몸을 그녀에게 맡겨 놓고 의자에 주저앉는다. 시계로 재보니까 머리만 깎는데 꼭 3분20초가 걸린다.

<상품광고 한 장 안 붙어>
본 기자가「런던」에서 수립한 삭발기록 3분15초와 막상막하다.
깎아 놓은 뒷머리를 훑어보니까 머리 깎았다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그대로 단발이다. 그러면서도 얄밉게 예쁜 미용사아가씨는 외마디 영어로『좋으냐?』한다. 『좋다』고 대답하면서 왜 그런지 고소를 짓는다. 길거리에 나와 가만히 보니까 중노년층을 빼놓고는 거의가 다 장발들이다. 더 짧게 깎았다간 정말『돈 사람』이란 말도 들을 뻔 했다.
길가에 환갑이 지난 할머니가 큼직한 저울을 놓고 멍하니 서있다. 『반찬거리 산것을 다시 재어 보라는 것일까?』안보는 척 옆에 서서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더니 디룩디룩한 중년풍의 아낙네가 털거덕 저울대에 올라탄다. 그러자 할머니는 감자가마를 재듯 쇠뭉치 추를 올려놓으며 관수를 잰다. 20관.
아주머니는 상을 찡그린 채 60「할더」를 할머니에게 건네주고 걸어간다. 가만히 지켜서 있어 보니까 이런 손님들이 꽤 온다. 여기서도 살찌는 게 고민거린가 보다.
자동개찰구에 1「포린트」(약45원)를 넣고 지하철「플랫폼」으로 내려간다. 도대체가 이상스럽다. 뭐가 그렇게 이상스러운가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한참만에 그 이유를 깨달았다. 상업광고가 한 장도 안 붙은 것이다. 자나깨나 어딜 가나 상업광고 속에 묻혀 사는 자본주의나라에서 온 사람에게 상업광고가 없는 세계란 꽤도 이상해 보인다. 차 속도 그렇다. 무언의 벽만이 있다.

<지하철 차 속 아주 깨끗>
그래서 그런지 정거장속도, 차 속도 병동처럼 깨끗하다. 차 속 광경도 좀 다르다. 「런던」지하철 속에서 막벌이꾼이건 귀족할머니건 모두 신문이나 잡지조각을 읽고 있는데 여기서는 뭘 들고 있는 사람이란 하나도 없다. 나도 그저 버릇으로 한 장 사든 신문『인민의 자유』를 호주머니에 넣은 채 멍하니 벽을 쳐다보고 선다.
「영웅의 광장」한 모퉁이에 자리잡은 국립미술관에서 하루를 지낸다. 「세바스티아노·델·피옴모」의『성모와 아기』, 「라파엘」의『한 청년의 초상』, 일곱 폭의「엘·그레코」, 다섯 폭의「고야」, 「벨라스케즈」의『농민의 잔치』, 「몰리오」「되레르」「메믈링」「렘브란트」「루벤스」「반다이크」, 「프랑스」쪽에 와선「델라크루와」「모네」「마네」「르노아르」「고겡」「세잔」「피카소」, 그밖에「반·고흐」「도미에르」…정말 세계 구석구석에서 많이도 그려들 놓고 갔다.

<박물관 시내에만 25개>
그 다음「켈레타지아」의「아시아」박물관으로 발을 옮긴다. 「인도네시아」의 인형들, 인도의 불상, 수많은 중국 자기들, 그리고「버마」「네팔」「타일랜드」일본, 그 다음에 한국 물건들이 보인다. 두개의 고려청자, 4개의 이조 백자. 고려·이조의 도공들이여! 지금 보고 있는가. 코 큰 사람들이 다가와서 잠깐 진열장에다 이마를 대고 선다.
「소방대 박물관」, 「로마」제국「지하박물관」까지 합쳐 박물관이 시내에 꼭 25개다. 한곳에 반나절을 잡아도 두 주일이 걸린다. 흔히 며칠동안 무슨 도시를『구경하고 왔다』하는 것은 멀쩡한 거짓말일수 밖에 없다.
『이달의 행사』라는 잡지를 펴 본다. 「프란츠·리스트」실내교향악단에 의한「바흐」와「모차르트」, 「바르토크」사중주단의「하이든」「브람스」「차이코프스키」, 「헝가리」국립교향악단의「베토벤」, 「오페라」좌에서의「오델로」, 미술관에서 열리는 무수한 전시회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헝가리」민속냄새를 맡으러 민속극장으로 발을 옮겼다. 「다뉴브」제철공장 민속무용「앙상블」이 출연하는「헝가리」민속무용의 밤이다.
좌석 약8백 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극장에 꽉 들어찬 관객들. 대개가 관광객 차림의 손님들이다.
하나 남은 옆자리에 영락없는 중년풍의 한국사람이 하나 들어와 앉는다. 이크, 드디어 북쪽 손님이로구나. 상대방도 말을 걸까 말까 하는 좀 어색한 눈치다.
막간에 선수를 쳐서『혹시「코리아」에서 오신 분인가요?』하고 얼떨결에 영어로 물어봤다. 「코리아」란 말은 어떻게 알아들었던지『노, 「울란바토르」』란다.
몽고 인민공화국에서 온 손님이다. 저쪽은 영어가 안통하고 이쪽은 그가 하는 소어가 안 통한다. 「인터미션」이 끝나 다시 돌아와 보니까 몽고사람은 간데 없고 낯선 할머니가 앉아있다.
무용은 발굽을 쾅쾅 울리며 추는 것이 아무래도「슬라브」족「스타일」이다. 민요는 우리의「강강수월래」같은 가락인데 어딘지 애조 띤 노래다. 오래 눌려 살아온 탓일까-.

<자동차 빌어 국경 넘고>
박물관구경에 지쳐 이왕 여기까지 온 길이니 좀더 남쪽「루마니아」까지 발길을 내딛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비행기로 갈까. 그러나 비행장 벌판에 붕 내려앉는 여행처럼 싱거운 것도 없다.
자동차를 몰고 국경을 넘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호텔」안「키브츠」「카운터」에 가서「랜드·카」교섭을 벌인다.
『자동차 한대 빌리고 싶다.』『언제 필요하냐?』『내일 아침부터 1주일.』『면허있느냐?』『있다』『쓸만한 거냐?』『못 쓸건 안 갖고 다닌다』『먼저 2백「달러」를 내라』『그건, 뭐냐?』『보증금이다』『여기 있다.』『「헝가리」돈은 안 받는다, 「달러」나「파운드」를 내라.』 10「파운드」짜리 8장을 내준다.
『차는 무슨 차냐』『「지글리스」다」『그게 뭐냐?』『소련에서 만든「피아트」125다』『일당 얼마냐?』『30「달러」에 휘발유는 네가 사 넣어야 한다.』무뚝뚝씨에게 돈을 치르고 방으로 올라갈까 하다 술집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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