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불안 부채질하는 정책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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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제정책이 갈피를 못잡고 오락가락하면 피곤한 쪽은 국민과 시장(市場)이다. 정책의 좋고 나쁨에 앞서 일관성이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이를 위해 경제팀 간에 긴밀한 사전 조율이 전제돼야 한다. 더구나 경제가 요즘처럼 비상 시국일 때 이런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새 정부 등장 이후 정책 당국자들 간에 내는 불협화음은 이러한 기대를 무너뜨리고 있다. 법인세 인하를 놓고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간 이견에서 재벌의 부당내부거래 조사 연기 여부까지 엇박자가 줄을 잇고 있어 혼란스럽다.

고건 총리는 지난주 북핵 문제와 이라크 사태로 경제에 불확실성이 높은 점을 감안해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내부거래 조사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말했으나 공정거래위원장은 당초 2분기 조사 예정에 변함이 없음을 밝혀 이를 부인하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 그런가하면 경기 침체에 대한 적자재정 처방에 대해선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여전히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새 출범한 초기에는 새로 취임한 인사들이 정책을 다듬어 내야 하므로 어느 정도 혼선은 예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혼선은 정부 내부에만 국한할 일이다. 안에서 충분히 조율하고 밖으로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총리 정부와 공정위 정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혼선이 되풀이된다는 것은 정책조율 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지금처럼 경제 주체들의 심리적 안정이 중요한 경제 위기일수록 정책 책임자들은 일관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청와대 경제팀과 경제 부처는 기능과 역할이 다르므로 경제 부처의 수장인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의 목소리가 모아져야 할 것이다.

국민도 과거 개발연대와 같은 일사불란은 원하지 않지만 경제팀 내의 혼선과 갈등을 바라지 않는다. 현 경제 위기를 타개하려면 북핵 사태 등 안팎의 불안 요인 해소가 우선돼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새 정부와 경제팀이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하고 있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