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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55호 고분은 지증왕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6개월간의 작업 끝에 찬란한 신라 때의 보화를 모두 들어낸 경주155호 고분의 주인공은 신라가 비약적인 발전을 꾀하는 6세기초 22대 지증왕임이 거의 확실시 되고있다.
서울대 박물관장 김원용 박사는 그 동안 출토유물을 일괄 검토한 결과 그 같은 추정이 가능하게 됐다고 주장하고 백제무령왕릉과 거의 같은 시기로 보아 틀림없다고 말했다.
서기500년 전후한 신라의 임금은 21대 소지왕(재위479∼499) 22대 지증왕(500∼513) 23대 법흥왕(514∼539)인데 그중 법흥왕 능은 경주 충현리에 있어 이미 사적176호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소지·지증의 두 왕릉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으며 대개 13대 미향왕 능이 있는 황남동 고분 군 속에 포함돼있을 것으로 짐작해 왔다.
김 박사는 155호분 출토유물의 성격이 어느 모로나 나라의 비약 상을 입증하는 인상이며 칠기에 그려진 그림 중 광배형 화염문, 자작나무껍질 모자차양의 연판무늬 등에 나타난 북위의 짙은 영향에 의해 6세기초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북위의 양식은 고구려를 거쳐 신라에 전해진 때문이다. 또 마구 가운데 증자 역시 한나라에서도 5세기부터 사용되는 것이며 김제의 요패장식과 기타 금빛이 백제 무령왕릉(524)과 같아 동시대의 유물로 단정된다는 것이다.
신라는 지증왕 때 비로소 「신라」란 국호와 「왕」이란 칭호를 쓰기 시작했으며, 또 순장제도를 폐지하는 한편 밖으로 국세를 넓히기 시작해 삼국통일의 기운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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