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곧바로 북에 설 이산 상봉 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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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 대북 현안으로 이산가족 상봉 카드를 꺼냈다.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다. 통일부는 박 대통령의 언급을 대북 전화통지문에 담아 북측에 설(오는 31일)을 전후한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했다. 김의도 통일부 대변인은 “오후 3시 판문점 적십자 통신선을 통해 전통문을 북측에 보냈다”며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을 오는 10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이산상봉을 거론한 지 5시간 만에 발 빠른 대북조치를 취했다.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 제안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북남관계 개선”을 언급한 지 닷새 만에 나왔다. 이 때문에 북한이 호응해 나올 가능성도 작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장성택 처형 사태 이후 새해 들어 대남접근 쪽으로 방향을 튼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추석 이산가족 상봉은 이미 실무적으로 상당 수준 진행된 상태다. 통일부 관계자는 “지난해 북한과 상봉 대상자의 생사확인과 명단 교환까지 마쳤고, 금강산의 시설도 점검이 끝났기 때문에 북한의 반응에 따라 빠른 시간 내에 실무절차 마무리가 가능할 것”이라며 “규모는 지난해 9월처럼 100여 명의 상봉단이 꾸려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설을 전후한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될 경우 2010년 10월 이후 3년3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게 된다.

 지난해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9월 25~30일) 직전인 9월 21일 일방적으로 상봉을 연기했었다. 당시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문제,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 등을 연계해 대화를 진행시켜오다가 남한 일부 매체가 이른바 ‘북한 최고존엄’을 훼손했다는 구실로 합의를 깼다.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담은 북한 신년사에 대해 “진정성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던 정부로선 북한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리트머스지로 이산가족 상봉 카드를 낸 것으로 보인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정부 간 직접 대화가 어려운 상황에선 인도적 문제인 이산가족 상봉밖에는 출구가 없다”며 “다만 북한이 다시 금강산 관광 문제와 연계전략을 펼 경우 정부가 얼마나 유연성을 발휘할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호응해 이산가족 상봉 카드가 성사될 경우 경색된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날 박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을 ‘첫 단추’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에 새로운 계기의 대화의 틀을 만들어갈 수 있길 희망한다”고도 했다.

다만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박 대통령은 ‘필요하면 만날 수 있으나 실질적 성과를 내는 회담이어야 한다’는 기존의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했다.

천권필·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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