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탄광 파업 때 비상사태 선포하고 군 동원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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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마거릿 대처(1925∼2013년) 전 영국 총리가 1984년 석탄산업 구조조정을 강행할 때 탄광노조와 하역노조의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사태 선포와 군 동원을 비밀리에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당시 영국 정부가 탄광 폐쇄 규모를 실제 계획보다 축소해 허위 발표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2일 봉인이 풀린 총리실 비밀회의록 등을 통해 확인됐다. 영국은 30년이 지난 정부의 기밀문서는 해마다 연초에 공개한다.

 영국 국가기록보관소에서 열람이 가능해진 내각 회의록에 따르면 대처는 84년 7월 16일 4500명의 군 수송 인력과 1650대의 군 트럭을 동원하는 비상계획을 마련했다. 탄광에서 발전소로 석탄을 운반하기 위한 용도였다. 이를 위해 국가 비상사태 선포도 고려했다. 또 이틀 뒤에는 2800명의 군인을 부두 하역작업에 투입할 것을 검토했다. 당시 영국의 하역노조는 탄광노조의 파업에 가세해 동조파업을 벌였다. 대처는 검찰총장에게 비상사태 선포의 법률적 조건을 문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곧 철회됐다. 3일 뒤 하역노조가 파업을 끝냈기 때문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대처 정부는 탄광노조의 거센 저항에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노먼 태빗 당시 노동부 장관은 대처에게 보낸 편지에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닌 것 같다”고 쓰며 정부의 패배를 예상하기도 했다. 대처 정부는 전체의 약 10%에 해당하는 20개의 탄광을 폐쇄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으나 84년 3월 대처와 6명의 각료가 참여한 비밀회의에서 3년 내에 75개 탄광의 문을 닫을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도 공개된 문서를 통해 밝혀졌다.

  대처의 비상사태 선포와 군 동원 계획에 대한 영국 언론들의 반응을 엇갈렸다. 보수당 지지 성향의 일간지 데일리텔레그래프는 “대처의 결단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논평했다. 반면에 데일리 미러 등 노동당 지지 언론들은 대처가 극도로 위험한 상황으로까지 나라를 몰고가려 했던 것으로 묘사했다. 중도 보수 성향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대처와 그의 측근들이 상대(노조)를 무찔러야 하는 적으로 간주했다”고 평가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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