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선책략, KADIZ처럼 풀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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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3일 중국이 예고 없이 동중국해와 이어도·마라도 상공에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했다. 아시아 지역 패권을 놓고 중국이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에 공세를 취하는 모양새였다. 미국의 동맹국이자 일본의 우방국인 한국은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새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대응하기 어려운 고차방정식 같은 사건이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정부가 위기 상황에서 적절히 대응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부는 당시 일본이 이어도 상공에 수십년간 고집해 온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 위에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확대 설정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외교부에 따르면 정부는 CADIZ 선포 이후 미국과 14회, 중국과 11회, 일본과 10회가량의 대면 및 전화 접촉을 가졌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일·중·한 3국 순방 일정을 고려해 우리가 만든 확대 방안을 성급하게 발표하지 않고 미국에 우리의 KADIZ 확대 입장을 사전에 충실히 설명한 것도 세련된 외교였다는 평가다.

 한국이 중국에 편승하려 한다고 불편해하던 미국은 한국의 KADIZ 확대를 지지했다. ‘한·미·일 대 중국’이란 불편한 대립 구도를 원하지 않은 중국도 일본을 의식해 한국의 KADIZ 확대에 적극 반대하지 못했다. 이런 양국의 대응을 사전에 잘 간파했다는 분석이다.

 윤 장관은 1일 신년사를 통해 “주변국 모두와 어려울 수 있는 고난도 위기상황을 62년 만에 새로운 질서로 전환시킨 것”이라며 “강대국 사이에 샌드위치가 된 것이 아니라 한국 외교의 새로운 면모와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은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잘 활용한 균형 외교의 성공 사례”라고 했다.

◆특별취재팀=강민석·장세정·채병건·허진·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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