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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정설 구설수 오르는 것 싫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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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미술 사학자인 유홍준(54.사진) 명지대 교수가 최근 차관급으로 격상된 국립중앙박물관장 후보 신청을 13일 전격적으로 철회했다.

유 교수는 이날 오전 본지에 전화를 걸어와 "관장 내정설 등 나를 비방하는 루머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중앙박물관장이 된다 하더라도 명예롭지 못하고, 박물관을 제대로 꾸려나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오늘 오전 후보 신청을 철회하는 글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유교수는 이어 "지난 밤에 인터넷 뉴스 매체인 오마이 뉴스에 나를 비방하는 글이 1백개가 올라왔다"며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특히 그는 "새 정부에 건의해 국립중앙박물관장직을 차관급으로 격상시킨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인데 그런 공로는 잊혀지고 내정설만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가 '내정설' 구설수에 오른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장 자리를 차관급으로 승격시키는 작업의 자문에 응한 것이 자신의 관장 공채 신청과 맞물려 와전됐다는 것. '내정설'과 관련해 유 교수는 "(대통령직)인수위에서 문화계 현안을 상의해 왔을 때 여러 자문을 하는 가운데 일어난 오해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파문은 지난 8일 오마이뉴스가 미술사학자인 오주석(47)씨가 유교수는 중앙박물관 관장감이 아니라고 밝힌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면서 시작됐다. 오씨는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과 '단원 김홍도' 등의 저자다.

오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물관 운영의 관건은 정치력이 아닌 경험의 문제다. 박물관을 오래 경험한 사람만이 업무 처리의 특성을 파악해 적재적소에 인물을 배치할 수 있다"며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오씨는 또 "박물관장은 학문적인 업적이 필요한 자리다. 얼마전 신문 기고에서 추사의 글씨를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 운운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학자적인 자질을 문제 삼았다.

유교수는 오씨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박물관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미술사 공부를 30년 한 사람이다. 미술사 공부를 박물관을 떠나서 할 수 있나. 박물관 사람 못지 않게 박물관 돌아가는 사정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학자적 자질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다른 경쟁자들도 이렇다 할 학문적 업적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일부에서 '완당 평전'의 오류에 대해 지적하는데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완당의 일대기를 그리려 시도했다는 점을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에는 오씨의 주장에 대한 의견이 13일 오후 현재 1백30여개 올라와 있다. 오씨의 주장에 공감하는 의견들이 많지만 유교수의 입장을 옹호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문화게릴라'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부정확한 역사나 문화정보를 재담식으로 풀어놓고 세간의 입맛에 맞추기를 잘하는 유 교수가 국박 관장으로 임명되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대학원생'이라는 필자는 "박물관은 퇴직 관료나 스타 교수들이 오는 데가 아니다"라는 의견을 올렸다.

반면 '어이없음이'는 "오씨의 비판은 정확한 데이터나 논거들로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개인적인 사견으로 비판한 것으로…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공박했다. '동네사람'도 "아직 관장으로 선임된 것도 아닌데 너무 매도하는건 아닌가요"라는 글을 남겼다.

유 교수의 후보 신청 철회에 따라 차기 관장은 이건무 중앙박물관 학예실장, 강우방.김홍남 이화여대 교수 등의 3파전으로 좁혀졌다. 유 교수는 "관장 신청을 철회하고 나니 오히려 속 시원하다. 남은 세명 중 누구라도 박물관장직을 잘 해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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