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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미회담 낙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양측의 호흡 맞은 회담>
『 로저즈 국무장관의 방한은 남북한의 긴장을 풀려는 박 대통령의 이니셔티브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북한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 보이는 신호다』-.
로저즈 장관을 수행했던 한 미국 관리의 말이다.
사실 미 국무장관의 방문은 실무적 합의보다 정치적 기조에 그 의미가 있는 것.
그런 뜻에서 이번 방문의 성과를 외교가에서는 7·4남북 성명, 10월 유신, 6·23 선언으로 이어진 한국의 대변화를 미국이 뒷받침했다는데서 찾는다.
로저즈 장관이 도착 성명에서 떠날 때까지 행한 발언은 이러한 뒷받침으로 차 있다.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었으나 막상 회담은 이렇게 수월할 수가 없었다는게 정부 관계자들의 말. 한국 측에서 하고 싶던 얘기를 로저즈 장관이 미리 꺼내고 미국이 궁금해하는 것은 우리측이 앞서 설명하는 등 한·미간의 호흡이 일치했다는 것이다.
한때 소원한 듯한 구석이 없지 않던 한·미 관계는 적어도 정부간 레벨에서는 메워진 느낌이다.
이러한 정치적 의미 외에도 로저즈의 방한은 임박한 28차 유엔총회 대책에 대한 중요한 협의의 기회였다. 기자회견에서 그의 반복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적극지원』발언은 이번 총회에서 공산 측이 제시한 유엔군 철수문제를 압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남북한 동시가입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까 하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아시아에서 발을 뺀다는 인상을 씻고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건재를 과시한다는 면이 있다.

<사이카 순경과도 거수>
로저즈 장관은 체한 46시간의 행동을 전적으로 우리 정부와 합의, 결정한데 따랐다.
시간이 짧은 까닭도 있었겠지만 예정된 사람이외에는 만나지 않았으며 별도 행동도 전혀 없었다.
그는 유일한 비공식 스케줄이었던 골프를 퍽 즐겼다고 한다.
금년 초 김 총리와 김 외무의 워싱턴 회전에 대한 답례로 준비된 골프모임은 장소를 네 차례나 바꾸는 산고를 겪었다.
당초 외무부는 안양과 뉴·코리아 골프장을 생각했으나 미국대사관의 요청으로 8군 골프장으로 정했다가, 로저즈가 한국 측 요청대로 하라해서 안양으로, 또 김 외무가 미국 측 편의에 따르자고 8군으로 바꾸었다가 18일밤 만찬에서 양자 합의로 안양으로 낙선된 것.
박 대통령과 로저즈 장관의 단독 요담 때문에 한시간 가량 늦게 시작된 이 모임은 9 홀만을 돌려던 것이 로저즈가 아쉬워 해 12 홀로, 다시 13홀로 연장됐다.
김 총리·로저즈 장관·김 장관·하비브 미 대사 순으로 쳤는데, 로저즈 장관의 성적이 제일 좋았다.
로저즈 장관부인 어델·랭스턴 여사는 19일 새벽 미국외교관 부인들과 골프를 계획했다가 비가 내려 취소 됐다고.
로저즈 부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상 매너에서 한국인에 대한 우호감을 풍겼다. 내외기자와 고별회견 때는 한국기자의 질문에 대해 꼭 『좋은 질문』이라는 찬사를 한 뒤 성실하게 답변했으며, 호텔 종업원이나 만찬 시 급사에게까지도 친근히 대했다.
이한에 앞서 공항에서는 그를 호위한 사이카 순경 13명과 악수를 나누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모교 교가에 혼자 박수>
우리 정부는 로저즈 장관 맞이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방한 일정이 14일에야 결정돼 시간이 없는데다 오히려 모두들 너무 관심이 많아 준비하는 사람들이 최후 순간까지 속을 태웠다고.
식사를 한식으로 하느냐 양식으로 하느냐, 여흥 프로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까지도 의견이 백출해 몇 차례 스케줄 수정이 불가피 했다. 무엇보다도 의전관계자들의 마음을 죄게 한 것은 때마침 우리 나라를 거쳐간 태풍 빌리 호.
자칫하면 비행기가 내리거나 뜨지 못해 방한 계획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그렇게 까지는 안되더라도 골프 같은 체한 스케줄에 큰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것.
미국대사관저와 대사관의 영빈관으로 정했던 로저즈 덴트 장관의 숙소가 15일 조선호텔로 바뀐 까닭은 대사관저의 에어컨이 잘 안돼 수리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이 바람에 조선호텔에는 미국 측에서 통신 컨트럴·센터를 급조하는 역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로저즈 방한 준비 중 백미는 외무장관 만찬 때의 코널 대학교가 연주. 뉴요크 주가, 미국민요가 배경음악으로 나오던 중 그의 국교교가가 연주되자 로저즈 장관이 느닷없이 박수를 쳐 참석자들이 모두 돌아봤다.
그는 만찬연설에서 자기가 박수 친 이유를 설명하면서 사의를 표했다.

<예정에 없던 덴트 발언>
로저즈 장관과 동행한 덴트 상무장관을 맞아 열린 한·미 상공장관회의에선 당초에 없었던 연설 대목이 덴트장관의 개회연설도중 포함된 적이 있어 한국 측 회담 관계자들이 고무됐다. 금수처치 완화 문제에 대해 『예외적인 완화를 귀국 후 검토하겠다』는 덴트 장관의 연설이 바로 그것.
상공장관회의의 핵심을 이루는 이 문제에 관해 개회벽두 이런 언질이 있어 관계자들도 의외로 생각했는데 이것은 회담 전 덴트 장관의 이낙선 장관 예방 때 사전절충이 된 듯.
지난 2월 상무장관직을 맡은 덴트는 한국이 처음으로, 정부측의 세심한 응대와 회담 진행준비에 만족해했다.
특히 이 상공장관 주최 만찬 때의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 노래를 듣고는 경탄을 연발.
그는 이한에 앞서 미국이 투자한 삼화인쇄회사와 전자부품회사인 시그네틱·코리아 회사도 둘러봤다. <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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