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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 구긴 민주노총·한국노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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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철도노조가 전격적으로 파업을 접으면서 총력 지원체제를 구축했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머쓱해졌다. 한국노총은 “사실상 투쟁은 끝났다”고 보는 반면 민주노총은 “파업을 접었을 뿐 투쟁은 계속된다”고 했다. 서울광장에서 거리투쟁에 돌입(28일)한 지 이틀 만의 입장 변화다. 민주노총은 파업철회 소식이 전해진 30일 오전 공식 트위터를 통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 시각 철도노조는 “국토교통위소위원회 구성을 확인한 뒤 노동조합의 파업철회 및 복귀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28일 총파업 결의대회 때와는 사뭇 다른 엇박자다.

 민주노총은 오후 들어 입장을 바꿨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접었지만 정부가 민영화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 민영화 반대투쟁은 계속되고, 총파업 투쟁도 이어간다”고 했다. 내년 1월로 예정된 세 차례 총파업(9, 16, 25일)은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의 생각은 다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주요 동력(철도)이 떨어져 나갔는데 총파업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연대투쟁은 물 건너갔다는 얘기다. 한국노총이 민주노총과 연대투쟁을 선언한 데는 복잡한 내부 역학구도가 작용했다는 것이 노동계의 분석이다. 겉으로는 민주노총에 대한 경찰력 투입(22일)이 연대투쟁의 발단이었던 것으로 비친다. 그렇다고 한국노총이 당장 노사정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위원회에 복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거리투쟁은 없겠지만 당분간은 선거국면이 이어져 (복귀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 (복귀를 위한) 조율과정을 거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어수봉(경제학)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양 노총이 싸우기 싫어도 싸울 수밖에 없는 국면에 들어서면서 출구전략을 짜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고 체면을 구긴 모양새여서 향후 노정, 노사 관계가 상당 기간 표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철도산업발전소위의 역할에 대한 여야의 생각이 달라 소위가 파업을 끝내는 출구전략 구실만 하고 성과 없이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조준모 성균관대(경제학) 교수는 “정부가 수서발 KTX 면허권을 발급한 이후에는 노조 내에서도 파업을 어떻게든 끝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다”며 “때마침 정치권에서 출구를 마련해 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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