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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박기춘, 민주노총 찾아가 김명환과 '한밤 담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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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철도파업 문제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오른쪽)과 민주당 박기춘 의원이 30일 국토교통위에서 철도산업발전소위 구성에 합의한 뒤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두 의원은 29일 밤 취재진의 눈길을 피해 민주노총 사무실로 들어가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을 만나 합의문 서명을 이끌어냈다. [김형수 기자]

“민주당 박기춘 사무총장과의 오랜 신뢰관계가 있어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

 “일요일(29일) 밤에 김 의원과 만났는데, 10분 만에 대화가 끝날 정도로 얘기가 잘 통했다.” (민주당 박기춘 사무총장)

 역대 최장기로 치달은 철도노조 파업 문제를 22일 만에 푸는 데는 29일부터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민주당 박기춘 사무총장이 벌인 11시간의 막후 조정이 결정적이었다. 두 사람은 파업 문제를 ‘신뢰’로 풀었다. 두 사람과 주변의 얘기를 종합하면 29일 상황은 이렇다.

 “형님, 철도노조 파업 문제로 상의할 게 있습니다.”

 박 총장이 29일 점심쯤 김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로부터 “국회 국토위원이니, 박 총장이 철도 문제를 풀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총장은 경찰의 수배를 받고 민주당사에 들어와 있던 최은철 철도노조 사무처장 등과 협의를 했더니 이들이 “새누리당과 청와대를 설득할 만한 인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박 의원은 곧바로 김무성 의원에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두 사람은 18대 국회에서 2010년 5월부터 1년간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아 협상 파트너로 호흡을 맞췄다. 그때 민주당 원내대표는 박지원 의원.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배운 두 사람은 “정치는 타협”이란 신조를 갖고 있다.

 김·박 의원 모두 상대방을 “최상의 협상 파트너였다”고 말한다. 김 의원과 박 총장도 이때부터 ‘형님, 동생’ 하는 관계가 됐다. 51년생인 김 의원이 56년생인 박 총장보다 다섯 살 많다. 박 총장은 이후 원내대표도 지냈다. 그는 스스로를 “진보적이지 않은 합리적 중도”라고 평한다.

 29일 오후 9시50분. 박 총장의 전화를 받고 해법을 모색하던 김 의원이 박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 있나. 내가 사무실로 가겠다.” 김 의원은 의원회관의 박 총장 사무실을 찾아 10분 만에 중재안을 마련했다. 새누리당이 반대해온 철도산업발전소위안을 받아들이고, 철도노조는 파업을 중단하는, 철도 문제 해결의 밑그림이 두 사람 사이에 마련됐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투 트랙’을 나눠서 뛰었다. 김 의원은 새누리당 지도부와 청와대, 박 총장은 민주당과 철도노조를 상대로 설득했다. 김 의원은 청와대 쪽엔 조원동 경제수석과 접촉했다.

 ▶김 의원=“철도산업발전 등 현안을 다룰 철도산업발전소위를 설치하는 내용으로 합의했습니다.”

 ▶조 수석=“그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합의문 뒤에 함정이 없겠습니까?”

 ▶김 의원=“함정이랄 게 있겠습니까.”

 오후 11시20분쯤 김 의원과 박 총장은 함께 광화문의 민주노총 사무실을 찾았다. 노측 책임자인 김명환 노조위원장에게 합의 사항에 대한 다짐을 받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우리가 원하던 그대로”라며 절충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자정쯤 민주노총 사무실을 나선 두 사람은 이날 최종 결과를 각각 당 최고위원회와 의원총회에 보고하면서 철도노조 파업의 종지부를 찍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병을 거의 다 딴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주면 금방 딴다”고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태에서 김 의원과 박 총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미인 동시에, 청와대의 ‘원칙론’이 주효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정치는 타협’이란 김 의원은 ‘정치는 원칙’이란 박근혜 대통령과 종종 충돌해 왔다. 4·24 재·보선에 당선돼 국회로 돌아온 김 의원은 이후 “청와대를 향해 가타부타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말을 아껴왔지만 철도파업을 풀어내면서 구원투수 역할을 해냈다.

 박 총장은 이날 의총에서 중재안을 설명하면서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100% 비가 온다고 한다. 인디언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이번 철도산업발전소위도 지난 1년 동안 의원들이 애써온 결과가 한데 모여서 나온 성과”라고 공을 동료 의원들에게 돌렸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부 강경파 중엔 수서발 KTX 자회사 면허가 난 상황에서 얻은 게 없다는 불만도 있지만, 철도파업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결과를 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말했다.

글=권호·이소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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