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퍼리치들, 중국서 발 빼 미국 ETF 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김민수(56·가명)씨는 지난해 가을 유니클로의 모회사인 일본 상장사 패스트리테일링에 1억원을 투자했다. 환손실 위험이 마음에 걸렸지만 신흥국에서 생산한 값싼 의류를 전 세계에 빠르게 유통시키는 패스트패션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샀다. 6개월 뒤인 올봄 김씨의 수익률은 엔화 기준 75%였다. 그는 “엔화값이 떨어지며 원화 수익률은 50%로 다소 낮아졌지만 국내에선 이런 기회를 찾기가 아예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올해 미국 상장지수펀드(ETF)와 프랑스 에너지 기업 등으로 투자 범위를 넓혔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가 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1년 118억1001만 달러였던 해외 주식 투자 규모는 올 들어 지난 27일까지 223억1226만 달러로 89% 성장했다. 시장이 커지자 증권사들도 해외 주식 거래 프로그램과 환전, 환 헤지, 양도세 처리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 주식 투자가 늘어난 원인으로 코스피 횡보를 꼽는다. 최근 2~3년간 코스피가 박스권에 갇히면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지자 해외 주식으로 눈을 돌렸다는 얘기다. 이윤학 우리투자증권 대안상품부 이사는 “지난해부터 예금 금리가 3% 아래로 떨어지면서 대체 투자 수단으로 해외 주식을 찾는 고액 자산가가 많아졌다”며 “선진국의 글로벌 기업은 변동성도 적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처로 각광 받는다”고 전했다. 우리투자증권은 올해 해외 주식 투자 서비스 매출이 지난해보다 128% 성장했고, 삼성증권의 해외 주식 투자 계좌 수는 두 배 늘었다. 신한금융투자는 은행과 증권사의 통합 VIP 거점점포인 PWM의 약정이 지난해보다 680% 증가했다.

 올해는 특히 미국 ETF가 약진했다. 미국 국채 금리가 떨어지면 수익을 내는 ‘미 국채 금리 인버스 ETF’는 우리와 신한·삼성 세 개 증권사 모두에서 판매 상위 10위권에 들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 시행을 앞두고 국채 금리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이들 ETF는 올해 들어 30% 이상의 수익을 냈다. S&P500지수에 포함되는 기업 중 대형사에 투자하는 코어 S&P500 ETF와 중소형사에 투자하는 S&P500 미드캡 ETF도 눈에 띄었다. 미국 증시 상승의 수혜를 누린 ETF들이다. 이윤학 이사는 “국내 ETF 투자 저변이 넓어지면서 해외에서도 종목보다 변동성이 적은 ETF 투자 수요가 늘고 있다”며 “특히 올해는 ETF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 증시가 많이 올라 ETF가 선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지고 미국이 떴다. 지난해엔 게임업체 텐센트와 식품기업 강사부홀딩스같이 홍콩에 상장된 중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가 많았다.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런런, 중국의 1·2위 입시전문업체 탈에듀케이션그룹과 투도우홀딩스, 중국 검색업체 바이두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종목은 올해 투자 상위 10위권에서 밀려났다. 이용훈 신한금융투자 해외주식팀장은 “중국 경제가 조정기에 들어가면서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줄었다. 홍콩 상장 기업뿐 아니라 미국 상장 중국 기업도 그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신 올 한 해 25% 넘게 성장한 미국 증시에 대한 쏠림이 뚜렷했다. 아베노믹스의 수혜를 받은 도요타자동차 같은 일본 기업과 재정 위기에서 벗어난 유럽의 기업들도 투자 상위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정선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