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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자동차] 첫 마이카족 손병희 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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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국내에서 왕족을 제외하고 자가용 자동차를 최초로 탄 민간인은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사진)선생이다.

의암은 봉건적인 악습을 타파하고 부국론을 주창한 구한말 지식인이다. 일제 치하 때는 항일운동에 일생을 바쳤던 독립투사이기도 하다.

의암은 1894년 동학혁명 당시 경상도와 충청도의 10만 동학교도를 규합해 관군과 싸웠다. 곧이어 청국군과 일본군의 개입으로 혁명이 실패하자 피신을 다녔다. 1897년 의암은 동학의 제3대 교주가 되었고 동학의 이름을 천도교로 바꿨다.

의암은 1901~07년 일본에서 도망자 생활을 한다. 그는 1905년 일본에서 열렸던 산업 박람회에서 자동차를 구입해 자가용으로 타고 다녔다고 한다.

어떤 차종인지 자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이 당시 일본에도 자동차가 10여대 밖에 없었다고 한다. 비록 이국땅이지만 왕족을 제외한 조선인으로는 최초의 마이카족이 된 것이다.

1907년 의암은 귀국한 뒤 꾸준히 항일 투쟁을 전개했다. 15년 의암은 일본에서 미국제 캐딜락을 구매하게 된다. 이 차는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純宗)의 어차(御車)와 같은 차종이었다.

그러나 얼마 뒤 의암은 순종의 어차가 자신의 자가용보다 낡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의암은 "내가 어찌 임금의 자동차보다 좋은 것을 탈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뒤 순종의 차와 바꿨다고 한다.

12년 왕실용으로 들여온 캐딜락은 지금까지 보존돼 있다. 그런데 이 차의 좌석과 유리벽을 봤을 땐 15년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의암이 순종에게 바꿔준 차일 가능성이 크다.

의암의 차는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 두꺼운 유리벽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의암의 목소리를 운전사가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의암은 운전사에게 행선지를 지시할 때는 앞뒤로 설치된 소리통을 이용했다.

이 차가 서울 가회동에 있는 의암의 자택을 오갈 때마다 사람들이 벌떼같이 모였다고 한다. 볼거리가 없던 당시에 자동차는 대단한 구경거리였던 셈이다.

전영선(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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