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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무슨 짓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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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대기자

2013년과 작별할 때다. 그래서 그런가. 다들 ‘안녕들 하시냐’고 안부를 묻는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모두 가슴이 답답한 모양이다. 설마 선거판에 난무하던 화려한 말의 성찬을 그대로 다 믿은 건 아닐 게다. 그래도 새로운 희망의 실마리가 풀려가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품었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니 의욕적으로 경제를 살리지 않겠느냐, 허니문 기간이니 싸움에 이골이 난 국회도 협조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희망은커녕 젊은이들의 아우성만 메아리친다.

 지난 1년이 남긴 흔적은 참담하다. ‘고·소·영’만큼은 아니라도 ‘수첩인사’는 뼈저린 시행착오를 거쳤다. 어이없는 추문으로 물러나는 사람이 생기고, 대통령비서실장이 5개월도 못 채우고 교체됐다. 탕평은 사라졌다. 일자리를 기대했던 ‘창조경제’는 ‘알 수 없는 3가지’라는 우스개 거리로 전락했다. 공약과 세수(稅收)와 원칙 사이에서 중소기업만 쥐어짰다. 대치정국이 계속됐지만 무슨 생각인지 집권당은 맞불만 놓았다. 야당을 설득하고, 달래는 ‘정치’는 찾기 힘들었다.

 야당은 강경파에 휘둘려 요구사항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협상도 어려웠다. 정부 출범 1년차에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장외를 전전했다. NLL 대화록, 국정원 댓글에 철도 파업…. 대형 이슈가 이어졌지만 사태를 장악하지 못하고, 극단적 목소리에 끌려다녔다. 선거가 끝난 지 1년이 넘도록 ‘선거 불복’의 유혹을 깨끗이 털어내지 못했다. 그런 선택을 통해 합리적인 협상보다 더 얻어낸 것이 뭔가. 또 그렇게 해서 국민에게 어떤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줬나.

 누가 더 잘못했나를 따지자는 건 아니다. 그래서 해결될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가장 큰 걱정은 자칫 ‘불복(不服)’의 정치문화가 고질병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확고한 집권 플랜부터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는 겨우 5년 단임. 임기 말에는 역대 정부들이 모두 레임덕에 허덕였다. 임기 초부터 흔들리면 시간이 없다. 이명박정부는 촛불시위로 정책추진 동력을 잃어버렸다. 노무현정부 때는 탄핵 사태가 벌어졌다. 내년처럼 중간에 선거라도 있으면 설상가상이다. 이리저리 빼고 나면 임기는 취임과 함께 끝나게 된다.

 정치권에만 책임을 돌리면 마음이 편한가. 욕을 하는 것으로 상황이 좋아진다면 다행이다. 물론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누가 뭐라건 중심을 잡을 게다. 자신이 집권했을 때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눈앞의 작은 이익, 큰 목소리에 흔들리기 마련이다. 귀는 막고 자기 목소리만 내온 우리 책임도 크다는 말이다.

 철도 민영화 같은 이슈들을 마주할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겁도 난다. 어쩌면 저렇게 자신만만할까. 철도노조처럼 이해 당사자야 그렇다 치자. 어떻게 저 많은 사람이 일도양단(一刀兩斷) 단정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선택하자면 민영화하자는 쪽이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굳이 민영화가 아니라도 경영 개혁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만능은 아니라도 시장의 바람을 쐬는 게 건강하다. 그렇지만 언제나 내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마음의 여유는 버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대학생 시절 나는 세상 일을 다 아는 듯이 마음대로 재단한 적이 있었다. 처음 듣는 일도 반정부의 잣대만 들이대면 해답이 나왔다. 유신 말기, 5공 초기, 너무나 분명한 집권자의 허물이 있으니 굳이 다른 기준을 들이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식의 시작은 의심과 질문이다. 그런데 그 모든 의문은 자기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걸 몰랐던 거다. 그 이후 나는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도그마의 노예가 아닌가. 이념의 노예가 아닌가.

 스스로 물어보자. 문제를 들었을 때 고민 없이 바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모든 일이 선악으로 구분되는가. 그러면 당신은 노예 1기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들리지 않거나 헛소리로만 들린다면 2기쯤 된 거다. 내 분야가 아닌 다른 영역을 넘나들고, 다른 사람들이 내 대답을 먼저 안다면 이미 3기, 4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미움과 증오는 판단을 빠르게 도와준다. 그러나 그게 맞을 확률은 매우 낮다.

 김대중정부의 등장은 엄청난 변화였다. 여야가 모두 집권 경험을 공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정책 토론을 할 토대가 만들어진 셈이다. 그런데 어찌된 건지 상황은 더 나빠진다. 귀는 막고, 입은 크게 열고…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음 선거를 준비한다. ‘끝이 시작’이라며. 하지만 집권하면 무엇 하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부만 계속 만들어낸다면.

김진국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