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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학촌에 세우려던『한국 관』건립 계획 좌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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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주섭일 특파원】「파리」의 대학촌에 한국 관을 세운다는 꿈이 깨어졌다.「프랑스」유학생들뿐만 아니라 여행자들까지의 오랜 숙원이던 한국간 건물을 실현에 옮기기 위해 재불 한인 회는 이곳 대학촌 재단 이사장인「피에르·마르트로」를 만나 한국간 건립에 필요한 대지를 요청했으나『이미「유고슬라비아」「알제리」등이 먼저 신청하고 있지만 대지가 없다. 한국간 지을 대지도 따라서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살인적인 주택난에 허덕이는「파리」에 도착한 유학생들은 무엇보다도『왜 하필이면 대학촌에 한국간이 없느냐?』고 한탄하기 마련으로 지난 천여 년 동안 유명 인사가 이곳에 들를 때마다 수없이 들은 것이 한국간 건립 계획이었다.
20세기초 당시 문 부상이었던「앙드레·오느라」가 학문의 요람지인「소르본」대학에 몰려드는 세계 각지의 대학생들에게 학문할 수 있는 좋은 환경과 값싼 공부방을 마련해 주기 위해 처음 구상한「파리」의 대학촌은 이제 이곳의 명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오노라」의 구상을 실현에 옮긴「에밀·도이치·라드·뮐트」백작이 은행가였던「다비·베일」로부터 40ha의 방대한 대지를 기증 받아 처음 학생 관을 건설,「뮐트」관이라 명명한 것이 1925년. 이후 40개 국가가 각기 자기 나라의 특징을 살려 학생 관을 지어 지금은 일본·월남·「라오스」·인도·「크메르」·「레바논」·「쿠바」·「튀니지」등의 건축양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소 국제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6천 여명의 학생들을 수용하고 있는 대학촌은「마로니에」의 향취에 묻혀 넓은 잔디밭 위에 황인종에서 흑인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모든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에서 학문의 본고장임을 실감하게 한다. 그래서 30여명에 달하고 있는 우리 유학생들은『어느 나라 관이든지 방의 20%를 타국 학생들에게 대여해야 한다』는 국제 친선을 목적으로 한 규정에 따라 타국 관에 입주 서류를 신청하기 마련이며 보통 6개월 이상 2년 동안 차례를 기다리며 곁방살이라도 하려고 하지만 이것마저 하늘의 별 따기-.
이곳 대학촌은 우리 나라와 전혀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닌 듯, 1932년에 문을 연 일본 관은 당시「파리」를 주름잡던 모 일본 재벌의 아들이 건축 자금 전액을 희사해서 지은 것으로 개관 「테이프」를 당시 일본에 볼모로 가 있던 영친왕 이 근 씨가 끊었다고 하는데 현재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현 일본 관장이 이 사실을 인정했다.
한인 회가 재단 이사장과 접촉을 가진 결과 타국 관에서 20개의 방을 한국에 대여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조건이 아주 까다롭고 방1개에 예약금 3만「프랑」(약 6백70「달러」), 보조금 1천「프랑」(약 2백25「달러」·매년 한번씩 지불)등 모두 62만「프랑」이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 사실상 한국간 갖는다는 꿈이 부서진 것이다.
이곳 대학촌에 많은 축제가 열리는데 그중 중요한 것은 자유·공산 등 세계의 전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10월의 국제 축전. 이 때에 각국의 고유한 음식을 만들어 팔고 민속 무용 등 전통을 자랑하게 되는데 학생 관이 있는 나라 없는 나라의 구별이 뚜렷해진다. 우리 나라는 해마다 유학생들이 이 축전에 참여 하지만 우리 관이 없기 때문에 대학촌 안에 천막을 치고 음식을 만들곤 하는 곤욕(?)을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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