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 이범석 수석 만찬 연설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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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가 대화를 시작한 지 어언 1년7개월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비록 많은 시간이 흘렀고 또 여러 차례의 회담이 거듭되었지만 회담의 근본 목표는 변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실행을 위한 방법 논에 있어서도 적십자의 기본 원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강조되고 또한 합의한 바와 같이 남-북 적십자 회담의 기본 정신이 남북간의 사상과 이념, 그리고 체제의 자리를 초월하여 순수한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남북의 현실이 요구하는 것이며, 동포들의 염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한 남북 적십자 사업은 남-북간의 정치·경제·사회·기타 모든 문제에 앞서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며, 쌍방이 적십자 인으로서의 본분을 지켜 성실하게 회담을 이끌어 나간다면 가장 손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남-북 적십자 인들의 예지와 양심으로 이끌어 가는 우리들의 역사적 사명은 비현실적인 제안과 논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남-북 적십자 인들이 서로 신뢰하고 서로 이해하여 이산가족과 친척들의 고동을 들어주어야 하겠다는 우리들의 기본 목표를 말로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하루 속히 행동으로 실천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 회담을 지켜보고 있는 남북으로 이산된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5천만 겨레들은 우리가 주고받는 대화에서 무엇이 현실적이며 생산적이고 합리적이고 성실한 것이고 또 어떤 것이 비현실적이며 비생산적이고 무리한 주장임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늘도 우리가 과연 무엇을 생산해 내는가 하는 것을 침묵 속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나는 이 기회에 적십자의 중립성이 남북 적십자 회담의 성공적인 결실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협조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정치적·사상적 성격을 지닌 논쟁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적십자의 중립성을 엄격히 존중한다면 어떠한 장애도 극복할 수 있고 남북간의 이해와 신뢰가 급속히 진전될 것이며, 동포들 간의 화해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기대한 사업목표를 원만히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남-북 적십자 회담을 5천만 동포가 기대하고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회담에 임하는 쌍방 대의들의 자세가 또한 중요합니다.
4반세기에 걸친 국토 분단이 가져온 난관이 크면 클수록, 쌍방 대표들은 더욱 이해와 성실과 인내를 가지고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남북 적십자 대표들은 5천만 겨레 앞에 약속한 사업과 민족적 염원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밝은 조국의 내일을 이룩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확인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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