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 당당하게 기자들 앞에 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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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국내외로 중대한 일이 이어지는데 국민은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가 없다. 대통령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물론 대통령은 장관이나 수석 비서관들을 상대로 얘기하고 그런 발언이 보도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지시 말씀’이요 일방통행이다. 기자회견에서 제기되는 많은 질문에 답해야 쌍방 소통이다. 취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철도파업이 오늘로 2주를 넘겼다. 역대 최장이기도 하지만 내용이 매우 심각하다. 명백한 불법파업인데도 정권에 대한 반대세력은 이를 투쟁을 확대하는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 정부가 ‘민영화 불가’를 거듭 확인하는 데도 반대그룹은 집요하게 ‘민영화’라고 주장한다. 일부지만 대자보와 SNS 등을 통해 괴담도 퍼진다. 어떤 면에선 2008년 광우병 촛불사태와 비슷하다. 이번에 법과 원칙이 밀리기라도 하면 내년부터는 사회적 갈등이 거리로 쏟아질 판이다. 이번 일은 정권의 국정운영에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국민 앞에 나서질 않고 있다. 정부의 입장발표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자신은 파업 8일째인 지난 1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언급한 게 거의 전부다. 그는 불법성을 지적하고 파업중단을 촉구했었다. 하지만 이런 간접화법으로는 부족하다. 생중계 기자회견이 필요하다. 그런 자리에서 대통령이 민영화가 아니라는 정부 입장을 직접 밝히고, 파업의 불법성을 적시하며, 원칙적 대처를 천명한다면 국민의 이해는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기자들이 전하는 노조의 주장에 대통령이 답하면 대통령은 ‘소통의 이득’을 확보할 수도 있다.

  1984~85년 대처 영국 총리는 탄광노조의 불법·폭력 파업과 싸웠다. 내각제 국가에서는 총리가 의회에서 수시로 연설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대통령제 국가의 기자회견 못지않다. 대처는 직설 화법으로 여러 번 국민에게 호소했다. “압도적 다수의 영국인은 협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저는 시위대를 뚫고 일터로 나간 분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결국 채산성이 없는 탄광을 폐쇄하려는 대처의 정책은 관철되었다.

  장성택 처형 같은 북한의 권력 갈등은 중요한 안보문제다. 대통령 스스로 ‘위중한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관련 장관 회의만 주재할 게 아니라 TV 카메라 앞에 서야 할 것이다. 국민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정부의 대처와 자신의 각오를 자세히 피력해야 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수시로 기자들 앞에 선다. 며칠 전에도 오바마는 연말휴가에 앞서 1시간 회견을 했다.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서는 자체가 국민에게는 ‘당당한 대통령’으로 비춰진다. 박 대통령도 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당하지 못한 대통령으로 여겨진다. 박 대통령은 51.6% 득표했다. 그리고 그만큼의 지지율도 누리고 있다. 두려울 게 뭔가. 국정원 사건이든 인사파동이든 생각대로 말하면 된다. 답변하지 못하면 정권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