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빈곤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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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ECAFE) 사무국은 오는 4월 동경에서 열릴 총회에 보고할 『72년의 「아시아」극동 경제보고』를 발표했다.
「에카페」지역의 경제정세는 선진국의 투자·원조가 줄고 농업성장이 둔화되었으며 인구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반면, 기대했던 녹색혁명의 성과는 일부지역에만 제한돼 있어 총체적으로 빈곤과 굶주림이 증대되고 있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개발의 60년대』를 거쳐 이를 다시 연장, 『70년대의 개발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유엔」의 열띤 소망에도 불구하고 세계 인구의 55%를 점하는 「에카페」지역이 더욱 심한 굶주림과 빈곤의 심연속에 빠져들고 있다는 보고는 충격적이라 하겠다.
우선 「에카페」지역의 정체를 촉진하고 있는 선진국의 원조 및 투자감퇴 경향은 바로 국제정세의 변화를 여실히 반영하는 것이다.
원래 후진국 개발론은 선진국이 제창했던 것이며, 그 동기도 동서냉전체제에 적절히 대응하라는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동서냉전체제의 붕괴과정이 여실히 드러난 70년대에 들어와서는 냉전전략으로서의 대후진국 원조의 가치가 떨어진 것은 숨길 수 없다.
때문에 「개발의 60년대』를 선언한 당시의 열의는 이를 다시 10년간 연장한 오늘날에 와서 그것이 도리어 정치적 의미를 상실한 것으로 풀이되며 이는 구체적으로 GNP의 1%를 원조한다는 선진국의 구호가 실적면에서 날로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선진 제국이 대후진국 원조를 줄이게 된 또 한가지 원인으로서는 60년대 후반부터 노골화한 국제통화파동을 들어야할 것이다.
오늘날 자유무역과 대후진국 원조를 주장하던 주요 선진국들이 거듭되는 통화파동 과정에서 명분과는 달리 보호주의·지역주의로 정책기조를 후퇴시켜 새로운 무역전쟁 상태를 조성하고 있는 점이 이른바 후진제국의 빈곤화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에카페』지역의 높은 인구증가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희망적 자료로서 큰 각광을 받던 녹색혁명의 기대가 수그러지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할 일이다. 세계인구의 55%를 점하는 「에카페」지역 식량사정의 악화는 바로 세계식량사정의 악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처럼 「에카페」보고가 비관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10여년의 힘겨운 노력 끝에 공업화의 기초를 닦아 이제 바야흐로 중진국을 바라보려는 우리의 처지에서도 정책적으로 깊이 참작할만한 것이다. 즉 대담한 외자도입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수출「드라이브」정책을 추진하려는 우리로서는 국제환경의 변화를 더욱 민감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이 60년대에 내세웠던 명분을 버리고, 이제 근린궁핍화정책도 불사하려는 경향을 노골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칫 불측의 장애물에 걸리는 위험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세계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국내정책은 앞으로 과도기적 성격을 짙게 내포하고있는 국제경제정세를 다각적으로 분석 평가한 연후에 그에 능히 대처할 수 있는 탄력성을 가져야 한다.
끝으로 「에카페」지역의 식량사정악화가 그대로 세계식량사정의 악화로 연결되는 성질의 것이라면, 우리의 국내농업정책도 주곡자급체제의 확립에 최우선순위를 두도록 체제정비를 서둘러야할 필요가 있다.
72년의 세계적 식량파동을 일시적인 것으로 평가해서는 결코 아니된다는 것은 세계 식량수급의 장기전망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추세로 보아 더욱 분명하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농정이 개구하면 걸핏 기업농·상품농업·농업기계화를 운위하면서 일견 주곡농업에서 이탈하려는 듯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깊이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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