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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렌지로 만든 주스, 한국산? 미국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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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외국에서 수입한 오렌지로 한국에서 주스를 만들면 이 주스는 한국산일까 아닐까. 정답은 ‘어디에 수출하느냐에 따라 다르다’이다. 한·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에선 오렌지 주스 총부가가치의 45%만 한국에서 형성했으면 한국산이다. 이 비율이 한국과 유럽연합(EU) 사이에선 70%, 한·칠레는 30%다. 미국은 또 다르다. 미국은 원재료인 오렌지가 한국산이어야만 오렌지 주스도 한국산이 된다. 반면 아세안 국가에 수출하는 오렌지는 수입 오렌지를 가공해서 만들어도 한국산으로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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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호주 FTA 타결로 한국은 11개 지역과 FTA를 맺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도 선언한 상태다. 이렇게 FTA가 늘면서 복잡한 원산지 증명이 기업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이미 홍역을 앓은 곳도 적지 않다. 지난 6월 미국 관세청은 60여 개 한국 기업에 FTA 원산지 증명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다. 완제품뿐만 아니라 부품이나 원재료도 일정한 비율 이상으로 한국산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완성차의 경우는 2만 종이 넘는 부품의 원산지를 일일이 점검해야만 원산지 증명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이 같은 원산지 증명 확인 요청은 2011년 84건에서 지난해 229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상반기까지만 244건으로 지난해 전체 요청 건수를 넘어섰다. 특히 지난해 7건이던 미국의 원산지 검증 요청은 올해는 6월까지만 79건에 이른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350개 기업 대상)에서도 대기업의 40%, 중소기업의 40.5%가 원산지 증명을 한·미 FTA 활용의 가장 큰 애로로 지목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경우는 원산지 증명을 몰라서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도 있고, 알지만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해 서류 구비를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 기업만의 일도 아니다. 수출하는 쪽의 원산지 증명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 수입상도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스위스 금괴 사건이 대표적이다. 2006년 9월 한국은 스위스·노르웨이 등 유럽 4개국과 FTA를 맺었다. FTA 체결 후 스위스산 금괴 수입은 전체 금괴 수입의 3%에서 절반 수준으로 급증했다. 관세가 면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관세청이 원산지 검증을 통해 175억여원을 추징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저순도 금을 들여와 스위스에서 제련한 것만으로는 FTA의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수출업체에 손해배상소송 등을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법무법인 바른의 김병철 변호사는 “원산지 증명서의 입증 책임은 납세 의무자(수출입 업자)에게 있다”며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해외에 공장을 설립할 때도 반드시 원재료의 원산지와 완제품 원산지의 변경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산지 증명의 벽만 넘으면 수출길이 확 열리기도 한다. 중견 토목·건설업체인 서광종합개발은 상반기 국내 시장 상황이 빡빡해지자 해외 진출을 추진했다. 백방으로 뛴 끝에 필리핀 라긴딩간 공항의 항공등화 공사 입찰을 따냈다. 그런데 현지 업체로부터 관세 절감을 위해선 한·아세안 FTA에 따른 특혜 원산지증명서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업체는 대한상의에 도움을 요청했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지난 10월 첫 수출에 성공했다. 공항 관련 사업에 따른 총 수출액은 100억원 수준이다. 경기도 평택의 한 진공포장기 업체도 OEM 방식에서 자사 브랜드로 전환하면서 원산지 증명의 벽에 부딪혔다.

이 업체는 한국무역협회의 도움을 받아 지난 8월 독일 수출에 성공했다. 무협의 김미경 FTA무역종합지원센터 과장은 “처음에는 복잡한 규정 때문에 힘들어할 수 있지만 업종별 특성에 따른 상담을 받으면 어렵지 않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바른의 김병철 변호사는 “원산지 증명과 관련된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도 회사 측이 해당 제품의 원산지를 특정 국가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면 가산세는 피할 수 있다”며 “최대한 원산지 증명에 필요한 증빙 서류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산지 증명에 대한 상담은 국번 없이 1380으로 전화하거나 무협 FTA 지원센터 홈페이지(www.okfta.or.kr)를 활용하면 된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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