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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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보면 귀동 딸로 자란「장르」는 결혼한 날부터 불행과 실의의 연속 속에서 헤매다 만다.
그래도 「장느」와 고생을 같이한 식모 「로자리」는 『인생이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군요』하고 말한다. 「장느」도 일생을 돌이켜 보며 자기 일생은 젊었을 때 꿈꾸던 만큼 기막히게 좋지도 않았지만,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고 술회한다.
서구인들은 끈질기게 삶을 이어 가려고 한다. 아무리 비참한 속에서도 삶의 재미와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그만큼 강인한 의지와 생활력을 갖고 있다 고나 할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말에 「어차피」니 「천생」이니 하는 표현이 있다. 지극히 한국적인 표현이라고 할만도 하다.
영어에도 「세컨드·베스트」(Second best)란 말이 있다. 「베스트」를 기대할 수 없다면「세컨드·베스트」라도 갖겠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나쁘게 보면 현실과의 타협이나 양보를 뜻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삶에 대한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이런 「세컨드·베스트」를 부정한다. 그만큼 비타협적 이라서가 아니다. 삶을 앙칼지게 영위해나가려는 의지의 결핍, 아니면 사고의 중단 내지는 방기에서 나오는 태도나 다름없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가난하기 마련인데…』 『천생 우리는 농사꾼인데…』. 이런 생활감정이 더욱 우리를 가난 속으로 몰아 넣던 게 아닌가 여겨진다.
「천생」이란 사람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팔자, 운명을 말한다. 가난을 팔자에 돌릴 때 체념하기도 쉽다. 참아 나가기도 쉽다.
하기야 발버둥쳐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지난날에는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천생…』이라는 넋두리도 생겼을 것이다.
우리들의 고전 <흥부전>에 나오는 흥부는 이를 데 없이 착한 농부이다. 그러나 이를 데 없이 주변도 없는 위인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팔자로 돌렸던 것이다.
아마 이게 지금까지의 가장 전형적인 우리네 농부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애틋하게 우리들에게 안겨주는 설움도 컸을 것이다. 제비가 호박씨를 안겨주기 전에는 도저히 헤어날 길이 없다고 누구나 봤던 것이다. 그런 한에 있어선 누구도 「세컨드·베스트」를 위한 노력이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작 일본지 보도에 의하면 경남 창령군 농민들이 만든 「경화회」는 회원들을 끊임없는 교육과정으로 몰아 넣음으로써 연간 10억 원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한다.
그것은 다각적이며 합리적인 농업경영, 기술의 자학 그리고 협동의 자세 등의 결과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차피」니 「천생」이니 하는 말에 담긴 사고에 대한 도전에서 나온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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