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학의 길, 총장이 답하다] 세계 멀티미디어 교육 모델 방송통신대 조남철 총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자리 잡은 한국방송통신대(방송대)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 교육행정가에겐 ‘필수 코스’다. 올해에만 가나·몽골·방글라데시·사우디아라비아·싱가포르·아이슬란드·일본·중국·대만·태국·필리핀 등 10여 개국에서 찾아왔다. 세계 두 번째로 설립된 원격대학인 방송대(1972년 개교)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다.

 지난 12일 집무실에서 만난 조남철 총장은 “우리 대학은 40여 년간 저렴한 학비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건강한 시민을 양성했다”며 “세계 각국이 우리의 노하우를 배우려고 하는 건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 총장은 “세계 원격대학의 흐름을 선도하는 성공 모델이자 800만 재외동포와 조국을 잇는 문화적 가교인 방송대야말로 ‘교육 한류’의 숨은 주역”이라고 말했다.

평생교육의 장, 신입보다 편입 더 많아

 - 방문한 외국인들은 주로 무엇에 관심 있나.

 “나라에 따라 다르다. 국민의 학력을 급격히 올려야 하는 아프리카 국가는 방송대의 초창기(1970~80년대)에 관심이 많다. 사우디아라비아는 90년대에 시작한 TV대학에 관심이 높다. 남녀가 한 공간에서 교육받지 못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여전히 TV강의에 머물고 있는 일본은 2000년대 구축한 멀티미디어 강의를 배우고 싶어 한다.”

 - 시대에 따라 학교의 역할도 달라졌다.

 “방송대가 ‘형편상 대학 못 간 사람이 가는 대학’이라는 건 편견이다. 요즘은 학위를 가진 사람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위해 온다. 80~90년대 신입생과 편입생이 3대 1 정도였으나 이젠 편입생(55%)이 신입생(45%)보다 많다. 법조인·의사·교수 등 전문직도 늘었다. 한번 배운 지식으로 평생을 버틸 수 없는 지식정보사회 아닌가.”

 조 총장은 방송대를 “국가·사회의 요청에 따라 변모하는 대학”이라고 말했다. 대학 진학률이 낮았을 때는 교육 기회를 늘려 교육 불평등 해소에 기여했고, ‘100세 시대’를 맞아서는 평생교육의 공간이 됐다. ‘학력 과잉’ 시대인 요즘엔 고졸 취업 활성화를 돕고 있다. 방송대는 교육부로부터 ‘선(先) 취업, 후(後) 진학’ 정착을 위한 ‘허브 대학’으로 지정됐다. 첫 신입생을 모집 중인 ‘프라임 칼리지’는 마이스터고·특성화고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이들을 위한 과정이다. 첨단공학부와 금융·서비스학부가 개설됐다.”

 - 기존 학과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방송대는 대체로 인문·사회계열 중심이었다. 공학은 원격대학 특성상 실험·실습이 어려워 개설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 취업’한 학생은 대개 이공계·상경계에 종사한다. 전공도 교육방식도 이들에 맞췄다.”

 - 교육방식도 달라져야 할 텐데.

 “실험·실습 강화를 위해 ‘사이버 랩(Cyber-Lab)’을 마련했다. 온라인으로 접속해 실험·실습을 체험하도록 했다. 오프라인 실습을 위해 한국폴리텍·한국기술교육대와 협정도 맺었다. 전국 35곳의 캠퍼스에서 실습하고 학점을 인정받는다. 서울대·KAIST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에게 원격 강의를 맡긴다.”

 - 온라인 교육 확대가 세계적 추세다.

 “올해부터 OER(Open Educational Resources, 교육자원공개) 사이트를 개설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총 100여 개 과목, 1500편에 이른다. 주로 인생을 재설계하려는 4050세대를 위한 강의다. 재취업 역량 강화, 은퇴를 위한 재정설계, 상담·힐링이 인기다. 기존 TV강의를 재탕하는 대신 이에 맞춰 콘텐트를 새로 제작했다.”

 방송대는 ‘입학은 쉽지만 졸업은 어려운’ 학교다. 42년간 258만 명이 입학했지만 정식으로 졸업한 이들은 55만 명(21.3%)에 그친다. 엄격한 학사관리 때문이다. 여느 사이버대학과 달리 한 학기에 한 과목당 6시간은 출석수업을 한다. 모든 과제물은 표절 검색 프로그램으로 검사해 ‘베끼기’ ‘짜깁기’를 차단한다.

학사관리 엄격, 5명 중 1명꼴로 졸업

 - 직장인이 80%인데 학업 부담이 적지 않다.

 “방송대 교수는 제자가 ‘다른 대학에 비해 덜 배운다’는 말이 제일 싫다. 학습량이 일반대와 똑같다. 시험은 교재 1쪽부터 끝까지, 한번 평가한 점수는 어떤 사정에도 고치지 않는다. 이게 방송대의 전통이다. 대학이 사회에서 받는 가장 큰 덕담은 ‘아, 그 대학 졸업하기 어렵다’ 아닐까.”

 -‘강의가 딱딱하다’는 평도 있는데.

 “오프라인 강의는 딴 이야기도 하는데 온라인은 정해진 시간에 할 양이 있으니까…. 그래서 중간중간 음악·인터뷰·동영상 등을 넣도록 했다. 학생 질문에 수시로 답하고 학습지도를 하는 ‘튜터’ 270명, 학교 적응을 돕는 ‘멘토’ 773명을 두고 있다. 학과·지역별로 1831개 소모임도 활동한다. 2030, 4050, 6080이 함께 공부하고 대화한다. 우리 슬로건처럼 ‘지혜를 나누고 인생을 배우는 대학’이다.”

 조 총장은 지방 국립대에서 6년여를 재직하다 87년 방송대로 옮겼다. 그도 당시엔 방송대를 잘 몰랐다. 방학에 방송대 출석 수업을 맡은 경험에 이직을 결심했다고 한다. “선풍기 없는 강의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열중하는 어른들이 내겐 구도자(求道者)처럼 보였다.”

 국문학자인 그는 일제시대 농민소설을 연구하면서 만주에 이주한 한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조 총장은 98년부터 방송대 제자들과 함께 후원회를 세우고 재중동포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재외동포·탈북자 위한 프로그램 늘려

 - 임기 중 재미동포·탈북학생 교육을 확대했다.

 “2011년부터 재미동포에게 간호학과 편입 기회를 주고 있다. 전문대를 나와 이민 간 분들인데 학위가 없어 승진·보수에서 불이익을 받아 왔다. 2월 졸업한 분이 ‘한국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다는 걸 잊고 살았다’며 고마워하더라. 이제 재외동포가 800만 명에 이른다. 선거권도 준다. 이들에게 우리 문화·역사를 가르치는 가교가 필요하다. 거주국에서 인터넷으로 수강하고, 평가는 현지 대학에서 받을 수 있게 하려 한다. 탈북학생을 위한 예비대학도 호응이 좋다. 통일 이후도 대비하고 있다. 북한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가르치려면 방송교육만 한 대안이 있겠나. 통일되면 평양에 방송대부터 세울 생각이다.”

 - 방송대의 모델을 수출하는 길도 있을 텐데.

 “공적개발원조(ODA) 차원에서 접근하면 좋을 걸로 본다. 내년부터 콩고에 방송대 시스템을 이식한다. 유네스코와는 자연재난·내란으로 황폐해진 국가에 교육 인프라를 재건하는 ‘PCPD(Post-Conflict, Post-Disaster)’도 함께한다. 방송대가 세계에 ‘교육 한류’를 심고 있다.”

천인성·이한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조남철 총장=195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휘문고,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문학)를 받았다. 87년부터 방송통신대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문학연구학회장(2000~2005년), 방송대 교수협의회장(2005~2006년), 중국 중앙민족대 객좌교수(2005~2008년), 재외동포포럼 상임운영위원장(2009~2010년) 등을 역임했다. 2010년 9월 방송통신대 6대 총장에 취임했다. 현재 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 독서르네상스운동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