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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성 비문화의 거점…미국대학의 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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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학의 존재이유를 오늘처럼 절실히 묻고 있는 시대는 일직이 없었다. 문화창조의 최고의 심벌이었던 대학은 곧 문화의 동의어였다. 이러한 전통에 의문이 일기 시작한 근대적 대학이 가장 앞서 발전했던 미국사회에서 부 터다. 생명을 창조하는 영광과 아름다움, 그리고 지성의 필요와 의무를 증명해야 한다는 문화의 역할에 대한 종래의 관념으로부터 지성의 필요성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회의는 대학이 신봉해온 이성주의의 전통과 체계에 불신을 몰고 왔다. 대학개혁을 내걸고 실험교육을 시도하는 미국의 대학들에는 권태·좌절감·허무주의가 만연되고 있다. 군대·산업계·대학의 협동은 자유주의자들이 추구하는 학문의 자유를 어차피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의회가 대기오염·외교 등 사회적 관심사에 관해 대학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는 경우 그들은 대부분 행정부에서 그 정책에 관련된 연구과제를 받았던 사람들로서 행정부의 정책을 견제하기는커녕, 그 정책에 학문이란 이름을 붙여 적극 지지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아더·베스트 교수(미「워싱턴」대)의 말대로 이 같은 대학교수의 편파성은 오늘날에 비롯된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 후에 야기된 치열한 논쟁에서 유럽의 대학들은 그후 원자의 성향에 따라 신교 아니면 구교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을 수 없었고 상대방의 저서, 심지어는 그 언어와 문화 업적까지 공격해야했다.
오늘날 뉴·레프트가 미국의 대학에서 판치는 현장은 조셉·매카디 시대에 반공단체가 판치던 것과 똑같은 학문의 정치화이다.
기계문명에 가장 앞선 미국 지성의 거점이던 대학이 비 지성·비 문화·신좌익화의 거점이 된 것은 미국의 대학들이 국가의지에 봉사하여 월남전 등에 앞장서면서 반발을 받은 결과다.
이 같은 미국의 교육제도를 모방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일수록 대학의 기능과 그것이 그 나라 문화와 미래에 대해서 갖는 창조적 역할을 되물어야 할 시기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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