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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식단과 순정 한국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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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의·식·주 가운데서 가장 보수적인 것이 식생활이라 함은 누구나 반성해 보면 스스로 알 수 있다. 즐겨 양복을 입고, 양옥에 사는 사람도 끼니는 대체로 한식을 버리지 못한다. 전통적인 음식문화가 갖는 국수 성·폐쇄성이 여기 있다.
우리는 바야흐로 세계적인 유동의 시대, 국내외의 관광이 갈수록 성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같은 관광의 시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또한 음식문화이기도 하다. ·
한국음식도 이미 한국사람만이 먹는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음식도 이제 말하자면 「소국」을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한국음식 가운데서도 가장 한국적인 음식, 그 맵고 짜고 퀴퀴한 냄새가 도무지 남들에겐 익숙해질 수 없으리라 했던「김치」가 가장 외국에도 많이 소개되고 선전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화의 속도 또한 가장 빠르다는 사실이다. 그건 마치 퀴퀴한「프랑스」의「치즈」나 독일의「자우어크라우트」를 더 많이 외국에서 찾고 있는 현상과도 비슷하다.
전통적인 음식문화는 오히려 그의 고유성 때문에 또한 국제성·개방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 25일부터 한식 점·대중음식점의 이른바「표준식단 제」를 채택했다. 종래의 한국음식, 특히 한정 식의 찬이 지나치게 많은 가짓수만을 늘어놓고, 그래서 다 먹지 못해 남은 것들을 다시 상에 올려놓는 등 그 비 경제성·비위생성의 폐가 많았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자는 취지이다. 이점, 표준식단제의 도입은 하나의 진보라고 할만하다.
식탁이란 말은 서양말의「메뉴」와 동의어요, 식단제의 도입이란 따라서 한국음식에 있어서의 찬의「메뉴」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당국에서 일방적인 행정조치로써 강행케 하고있는 표준식단 제는 기실 찬의 가짓수의 제한과 밥그릇을 공기로 통일한다는 것 이상의 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달리 말하면 한식의 주식과 부식을 그 양에 있어서 제한하자는 것이나, 이것이 식생활의 근대화를 위해서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표준식단제의 도입과 함께 없어서는 안될 것은 한식의 질의 문제이다. 벌써부터 식단제의 실시가 밥과 반찬만 줄임으로써 실질적으로는 값 인상만 결과했다는 시민의 소리가 있다는 것도 그냥 흘려들어선 안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예전엔 그처럼 알뜰한 주부들의 손에 의해서 대대로 전승되어 온 한국음식이 도시화·상품화됨으로 해서 그 고유한 맛과 멋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던 터이었다. 국밥 한 그릇, 비빔밥 한 그릇도 좀처럼 하여서는 그 순정한 진미를 찾아볼 수 없게 되고, 사이비요리, 엉터리 음식이 활개를 치고 있는 세상이다. 일본음식·서양요리를 흉내낸 국적불명의 한국음식이 어디서나 버젓이 한정식상에 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이비요리·엉터리 음식을 자라나는 제2세들이나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마치 진짜 한국음식인 것처럼 상 미하고 평가하고 있다.
한식의 양의 제한에 앞서 그 질의 개선을 주장하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모처럼「표준」식단 제를 실시하는 기회에 국밥이건, 점심이건, 그 찬 하나 하나에 전문가들의 자문과 과학적인 검토를 거쳐 이것이 한국음식의 순정한「정형」이라는 틀을 세워 이를 표준화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된다. 어느 나라 식기인지 알 수 없는 밥공기의 강요도 문제다. 당국의 일고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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