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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미국] 9·11 이후 방탄차 잘 나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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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타이어가 터져 산산 조각이 나도 시속 45㎞의 속도를 보장하는 특수 고무휠(run flat wheel), 구경 44구경 매그넘 권총의 탄환도 뚫지 못하는 두께 4~5㎝짜리 방탄유리, 수류탄이 터져도 모든 파편을 차단하는 바닥 강판, 방탄조끼와 헬멧에 사용되는 케블러 고분자섬유로 된 차 내부의 중간재….

지난 주말 미국 로드아일랜드 워윅시에 위치한 BMW 판매장. 고객들이 쇼 룸 가운데 진열된 검은색 'BMW 740IL'의 설명서를 들여다보며 구경에 열중하고 있었다.

"007차처럼 생기지도 않았고 겉보기엔 뭐 별 차이도 없네"라던 어느 고객은 차 문을 열다 말고 "어이쿠, 이거 문짝부터 대단하다"라며 웃는다. 이 차 문짝 하나의 무게가 70㎏, 차 전체는 2.1t에 달한다.

딜러인 릭 더먼은 "2000년 4월부터 다른 차를 팔기 위한 고객 유치용으로 이 차종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차값이 10만달러가 넘어 누가 사가겠느냐 싶었는데 9.11테러가 터지고 얼마 뒤 한 부유한 인근 주민이 이 차를 사갔다. 이제는 회사 최고경영자나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종종 팔린다"고 말했다.

9.11테러 이후 미국에서 방탄차 판매가 빠르게 늘고 있다. 그동안 탄저균과 우편함 폭발물 테러, 스나이퍼 연쇄 저격 사건 등 크고 작은 충격에 시달린 데다 앞으로도 이라크전 등으로 각종 테러와 위협이 계속될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현재 시판용 방탄차의 선두주자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가드'시리즈. 지난해부터 매출이 눈에 띄게 늘자 최근에는 사양을 세 가지로 늘려 세계적인 마케팅 활동에 들어갔다.

그동안 방탄차 시장을 외면해온 포드자동차도 지난달 VIP들이 가장 애용한다는 링컨 타운카에 방탄장치를 한 '타운카 BPS'(평균 14만달러)를 선보였다.

제너럴 모터스는 그동안 축적된 기술이 상대적으로 약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미국 내 최대 방탄차 개조업체인 스칼렛 몰로니와 손잡고 올해 말까지 '캐딜락 데빌'을 내놓을 계획이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BMW는 차별화 차원에서 방탄뿐 아니라 독가스.세균 등 화생방 공격까지 막아낼 수 있는 '760Li HS'를 지난주 제네바 모터쇼에서 선보였다.

CNBC 텔레비전의 자동차 담당인 필 르보 기자는 "방탄차 시장의 경우 고객 보호 때문에 정확한 통계치가 없지만 지난해 전세계 시장규모는 개조 물량까지 포함해 20억달러(미국시장 60%)대로 추정되며 이는 1995년보다 4.5배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경호용 승합차.리무진 방탄 전문 개조업체인 캘리포니아 '베커스 바디아머'사의 하워드 베커 사장도 "9.11 이전과 비교할 때 대기업.금융기관 총수들의 구입이 늘어나 매출이 최소한 세 배로 증가했다"고 밝히고, "최근에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위험이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미국뿐 아니라 중동.아시아지역의 수요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나친 우려가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그는 "지난해 워싱턴 연쇄저격범 사건 같은 것이 벌어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느냐"고 반문했다. 방탄차량은 테러공격이 없더라도 튼튼한 차체와 각종 안전장치 때문에 교통사고 때에도 피해를 최소화해 주는 측면이 있어 수요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바로잡습니다>

3월 12일자 19면 '동서남북'기사 중 구경 44㎜ 매그넘 권총은 '44구경(0.44인치) 매그넘 권총'으로, 미국 방탄차의 유리두께 4~5㎜는 '4~5㎝'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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