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떠오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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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해.
아침해가 떠오른다. 찬란한 새 아침의 해란다.
묵은해가 가시고 이제 계축의 새해라고 한다. 새 해에는 새 태양이 뜨고, 그러면 또 새 기운이 솟아오르고…. 모두들 이렇게 기원한다.
사람들은 옛부터 새 복을 찾으려고 집을 바꾸고, 이름을 바꾸고 그리고 꿈을 새롭게 하곤 한다. 갸륵한 환상이랄까.
어제의 대양이나 오늘의 태양이나 조금도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만 계축의 해는 임자의 해와는 다른 것인 양 여기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새해라고 다를 것은 없다. 묵은해와 똑같이 둥글고, 붉고, 그리고 유구한 옛날부터 더듬어 온 똑같은 궤도를 밟아 아침에 동쪽에서 떴다가는 저녁 녘 서쪽으로 떨어지는….
그래도 우리는 뭔가 다른 양 여기고 싶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애틋한 기원이랄까.
동해의 새해는 『상운이 집히는 곡』 마냥 서기에 가득 차 있기만 하다. 그지없이 찬란하기만 하다.
그러나 도심의 포도 위에서 맞이하는 새해는 매연에 그을려 그저 앙상하게만 보이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 새해도 다른 것일까. 아니면 새해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일까. 그래도 누구 나가 한결 같이 바라는 갸륵한 꿈이 있다.
지난 한해 동안 복에 겨운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복을 찾다 지친 서글픈 인생들도 많았을 것이다.
복도 화도 전혀 고르지가 않았다. 묵은해를 하루라도 더 묶어 두고 싶어하는 사람보다도 묵은해가 하루라도 빨리 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 새해가 이제 밝은 것이다.
새해라고 묵은해와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뭣인가 달라야 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하고 싶은 것이다.
지난해의 슬픔 때문이 아니다. 그저 새해에는 누구에게나 고르게 복이 있기를, 그리고 기쁨이 나뉘어지기를 바라고 싶기 때문이다. 소박한 꿈이랄까.
새것은 뭣이나 다 좋은 것도 아닐 것이다. 새해라고 묵은해보다 더 많은 기쁨을 안겨 주리라고 굳게 믿을 수도 없다.
그러나 새해에는 적어도 꿈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희원할 수 있는 가능성만이라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새해의 태양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누구의 눈에나 다같이 둥글고 찬란하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새해가 밝아 온다. 새해가 또 무슨 슬픔을 안겨 줄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그저 밝은 일들만을 기다리는 기쁨으로 가슴을 부풀려 놓고 있기만 하면 될 것이다. 어리석음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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