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스포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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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작은 술병모양의 표적물을 10개 세워놓는다. 20m쯤의 거리에서 공을 굴린다. 그 표적물을 맞추는 것이다. 파열음이 자지러진다. 술병모양의 표적물들은 부서질 듯이 쓰러진다. 누가 더 많이 넘어뜨렸는가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 이른바 볼링(Bowling)경기. 표적물은 핀(Pin), 공은 볼이라고 부른다. 볼의 무게는 4·5㎏내지 7·26㎏.
그 유래는 독일의 케겔(Kegel) 경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표적물은 술병모양을 하고 있었다. 필경은 『무엇인가 때려부수고 싶은 충동』을 만족시켜주는 놀이였던 것 같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르틴·루터가 바로 이 볼링이 둘도 없는 팬이었다. 그는 심지에서 불타 오르는 열화이 의지를 볼링과 같은 파괴적인(?)유희로 달래었던 것이다.
이 경기는 이민에 의해 미국에 전해졌다. 1840연대에는 전 미국에서 시정의 오락으로 유행했었다. 미국은 그것이 도박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한때 금지령까지 내렸었다. 당시의 핀은 9개 있다. 그후 10개로 늘어난 것은 그 법령을 피하는 요령이었다고 한다.
한 관도 넘는 볼을 20m까지 굴리는 동작은 운동이 될만도 하다. 몇 차례하고 나면 이마의 땀을 씻어야 한다.
요즘 이 볼링은 시정의 레저·스포츠로 인기가 대단하기보다. 2백원이면 볼을 20회는 굴릴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스트레스를 푸는 스포츠로는 그럴듯하다. 10개의 핀을 자신의 손으로 때려부수는(?)것은 여간 후련하지 않는다. 분풀이라도 실컷 하고 난 기분이다.
사실 현대인은 조직생활에 얽매인 톱니의 한 눈금과 같이 자신의 의 기능이 단순화하고 또 억눌려 있다. 개성의 다양함이 없는 생활은 금방 피곤하고 지루해서 생활은 금방 피곤하고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여가(레저)의 시간을 적절하게 구사해야 한다. 레저·스포츠가 각광을 받는 것은 우연한 유행이 아닌 것이다.
테니스의 유행도 그런 동기이다. 사람들의 선글라스를 끼고 야구를 구경하는 방관자로 이젠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몸으로 뛰어들어 행동해야만 비로소 직성이 풀린다.
테니스는 자신에게 위기로 닥쳐오는 공을 받아서 상대방에게 던져 준다. 래키트는 위기를 쳐 내는 방패의 구실이다. 이것도 역시 스트레스를 푸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마치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가라앉은 불만과 애수와 연중의 앙금을 모두 덜어내는 행동이 테니스로 대신된다.
레저·스포츠는 이제 현대시민의 정신적 호흡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문제는 시민생활의 정신 분석적 백치를 얼마나 건전하게 높여주는가에 있다. 그것은 업자들의 도덕적 수준에도 책임이 있다.
레저·스포츠 장에서 마저 피로와 환멸을 느끼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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