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美보다 짭짤한 日? 꿈을 접기엔 아직 젊은데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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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호 19면

최나연의 큰 눈이 더 동그래졌다. “지애가 안 나왔다고요?”

성호준의 세컨드샷 ③ 신지애의 후퇴

 지난달 25일 끝난 LPGA 투어 CME 타이틀 홀더스에 신지애가 없었다. 각종 개인 타이틀이 걸린 최종전인 데다 우승상금만 7억원이 넘는 큰 대회여서 신지애로선 건너뛸 경기가 아니었다. 조직위에 물어보니 아예 출전 신청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나연 같은 한국 선수들이 놀랄 만도 했다. 불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신지애는 한 주 뒤 일본 여자골프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에 나갔다. LPGA 최종전에 빠지고 일본 최종전에 나간 건 뭔가 중요한 변화가 있다는 얘기다.

 그의 매니지먼트사 쪽에선 “신지애는 내년 일본 투어 카드 유지를 위한 대회 수와 상금액을 채우기 위해 일본 최종전에 나가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드가 확보됐으니 신 선수가 내년 일본 대회 비중을 높이려 한다”고 했다. 신지애가 미국 투어를 접는 건 아니다. 일본 투어의 비중을 얼마나 늘릴지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메이저리그인 LPGA에 전력투구하지 않는다는 건 의미 있는 변화다. 이유는 일본 투어에 신지애 팬들이 많고 신지애도 일본 투어에 유달리 애정이 많기 때문이란다.

 자기 팬이 더 많다고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일본을 택하는 야구선수가 있을까. 네덜란드 축구 리그 분위기를 좋아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자진해서 나오는 선수가 있을까. 신지애가 후퇴하는 것으로 보는 이유다. 여자골프의 가장 거친 필드인 LPGA에서 한발을 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판알을 튕겨 보면 일본 투어가 실리 면에서는 낫다. 미국 투어는 힘들다. 전 세계를 돌아야 해 여행 경비도 많이 들고 몸도 피곤하다. 입에 맞는 음식도 찾기 어렵고 벌이 면에서도 그렇다. LPGA 투어는 일본보다 총상금이 많지만, 세계 최고 선수들이 각축전을 벌여 상금을 따내는 건 훨씬 어렵다. 같은 실력이라면 일본에서 뛰어야 수입이 더 좋다. 힘만 들고 돈 안 되는 LPGA 투어에 굳이 집착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일반 선수라면 그렇다. 신지애는 아니다. 신지애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꿨고, 이룰 수 없는 일을 이룬 선수다. 신지애처럼 작은 선수가 세계 1등이 되리라고 생각한 골프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신지애는 무모하게 문을 두드렸고, 멈추지 않았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축구의 리오넬 메시가 그런 것처럼 신장이 아니라 심장의 크기로 우뚝 선 ‘작은 거인’이 됐다. 신지애는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첫 한국 골퍼다. 최경주나 박세리 같은 아이콘이다.

 특정 선수가 어떤 투어에서 뛴다고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할 일은 아니다. 나름대로 계획이 있을 것이다. 특히 신지애는 정신적인 피로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2003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사망 보험금을 종잣돈 삼아 10년간 배수진을 치고 살아온 그다. 오랜 시간 지고 다닌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이상이 아니라 현실과 타협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점점 힘들어하는 기색도 엿보인다. 상금·세계 랭킹 모두 1위였던 신지애의 올해 상금은 22위, 세계랭킹은 14위까지 떨어졌다. LPGA 투어에서 조금씩 코스 길이를 늘리는 것도 부담이다.

 그래도 너무 젊다. 신지애는 내년에 스물여섯이다. 체조선수도 아닌 골프선수가 스물여섯에 꿈을 내려놓는 건 아쉽다. 그러기엔 신지애가 지금까지 써온 동화가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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