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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모두 이어도 포함 땐 방공식별구역 유명무실해질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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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송근호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예비역 해군 중장)과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예비역 공군 대장)이 5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 등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사진 왼쪽 송근호, 오른쪽 이한호. [박종근 기자]

“군함의 항적(航跡·스크루가 일으킨 물거품)을 쫓아가면 국제정치의 현장이 나온다.”

 바다를 누비는 군함은 어쩔 수 없이 국제성을 띤다는 의미로 해군 전략가들이 언급하는 격언이다. 분쟁이 있는 곳에 군함이 출동하다 보니 군함이 바다를 가르며 남긴 하얀 포말을 따라가면 지금 어디가 가장 뜨거운 분쟁지역(hot spot)인지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해군력으로 바다를 제패한 나라가 근·현대 세계 패권을 차례로 휘둘렀다.

 해군의 격언을 지금 이어도와 남중국해에 약간 변형해 적용하면 딱 들어맞지 않을까.

 지난달 23일 중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하면서 남중국해 일대 하늘엔 먹구름이 드리우고 바다엔 파고가 드높다. 미군의 B- 52가 출격하고, 일본 자위대 조기경보기가 출동했으며, 한국 해군 해상초계기(P3- C)가 이어도 상공을 초계 비행했다.

 중국의 최초 항모인 랴오닝(遼寧)함이 칭다오(靑島)의 북해함대 기지를 떠나 동중국해를 거쳐 남중국해로 남하하며 보란 듯이 무력시위를 하자 미국은 USS 조지워싱턴호가 훈련에 돌입하며 대응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조지워싱턴호와 랴오닝함의 궤적을 따라가면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판도가 드러난다’는 새로운 격언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달라진 국가 위상 덕분에 19세기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논리 비약이겠지만, 강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국익을 보전해야 하는 엄중한 숙제는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한·중이 이어도 관할권을 놓고 갈등해온 상황에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로 이제 이 문제는 단순히 하늘과 바다를 나눠 보는 안목으론 풀 수 없게 복잡해졌다.

 송근호(67) 한국해양전략연구소장과 이한호(66) 전 공군참모총장. 해군과 공군에서 약 40년씩 군 생활을 한 두 예비역 장성을 한자리에 초대했다. 군종(軍種)은 서로 다르지만 각각 1964년과 65년 1년 차이로 해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이 전 총장이 지금도 “선배님”이라고 예우하는 사이다. 송 소장은 해군 2함대사령관, 해군작전사령관,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을 거쳤다. 이 전 총장은 공군 전투비행단장, 공군작전사령관, 공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을 거쳤다.

 - 현역 시절 ADIZ와 관련한 경험이 있나.

 이한호 전 총장(이하 이)="소령 때 대구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소련 항공기들이 비행계획도 제출하지 않고 동해 상공의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에 들어와 긴급 출동한 적이 많았다. 기상이 좋을 때는 상대 조종사의 얼굴까지 빤히 보여 ‘우리 ADIZ에서 빨리 나가라’고 손짓을 했을 정도였다.”

 송근호 소장(이하 송)="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비행정보구역(FIR)과 달리 ADIZ는 국제법의 보호를 못 받는다. 다만 1950년 12월 미국이 최초로 도입한 이후 60년 이상 존속하면서 국제 관습법적 근거가 없지는 않다.”

 - 미 태평양 공군이 51년 ADIZ를 설정하면서 이어도를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에 포함시킨 것은 잘못 아닌가.

 이="지금 보면 불쾌할 수는 있어도 6·25전쟁 당시 상황에서 중공군의 개입을 막을 때 제주도 남쪽 하늘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작전구역으로 여기지 않았다.”

 송="전설 속의 이어도(파랑도)를 제주해양수산청이 이어도라고 처음 공식 명명한 것은 87년이다. 50년대엔 수중 암초인 이어도를 주목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 해양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해양 관할권이 크게 부각되면서 하늘의 ADIZ와 바다의 해양 주권을 연계시키면서 복합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정부는 일본이 69년 JADIZ를 선포한 지 10년이 지난 79년에야 KADIZ와 JADIZ 조정을 위한 협상을 제안했고 83년에 한 차례 더 협상을 제안했다. 일본은 그때마다 거부했다.

 - 정부가 2008년 KADIZ를 국내법에 고시하면서 이어도를 넣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 아닌가.

 이="공군이 한·일 방공실무회의를 통해 92, 94, 95년에 계속 마라도·홍도까지 KADIZ 확대를 요구했지만 일본은 현상 유지를 주장했다. 2008년 군용항공기 운용 등에 관한 법률에 KADIZ를 처음 넣었다. 그 전에는 우리 법에 근거조차 없었다.”

 송="사실 이전에는 이어도 관할권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공군의 KADIZ와 해군의 해상작전구역(AO)이 일치하지 않아서 생기는 어려움이었다. 해·공군의 긴밀한 합동작전이 필요한 대간첩작전 때가 특히 그랬다.”

 - 중국이 CADIZ를 일방적으로 선포한 의도를 어떻게 보나.

 송="바다 위의 하늘에 긋는 선이니 포괄적으로 보면 동중국해 전체에 대한 중국 관할권의 확대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과의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적극적 행동의 성격이 있다. 미국이 주도한 아시아 해양 안보질서에 대한 견제 차원도 있다. 강도 높은 해양 팽창 전략의 구현이고, 중국의 해양 굴기(<5D1B>起·부상)다. 미국과 신형대국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힘의 전이 과정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 중국은 하늘과 바다를 연계하나.

 송="이제 바다(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EEZ)과 그 위의 하늘을 하나의 관할권으로 봐야 하는 시대가 됐다. 분리해서 보면 안 된다. 중국이 육군 주도의 ‘7대 군구(軍區)’ 개념에서 벗어나 항모 작전 능력을 대폭 키우면서 해·공군의 역할을 강화해 ‘5대 전구(戰區)’로 미국처럼 개편하려는 이유를 잘 살펴야 한다.”

 이="원래 ADIZ는 방공식별이 목적인데 이제 항공기 통행이 급증하면서 바다에서 해양 관할권과의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ADIZ와 EEZ가 크게 다르면 여러모로 불편할 수 있다.”

 - 중국은 한·중 관계 악영향을 알면서도 왜 이어도를 CADIZ에 포함시켰을까.

 이="어차피 JADIZ에 이어도가 이미 들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은 부담을 덜 느꼈을 수 있다. 한·중 간에 EEZ 협상이 남아 있다는 사실도 중국은 의식했을 것이다.”

 한·중은 이어도 인근 해역의 EEZ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96년부터 14차례 협상을 했으나 모두 결렬됐다. 6월 말 한·중 정상회담 부속서에 ‘해양경계 획정 협상을 조속히 가동한다’고 명시했으나 연내 협상 재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 우리는 KADIZ를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선포해야 할까.

 송="비행안전이 목적인 FIR과 군사안전이 목적인 ADIZ를 일치시키는 것이 좋다. 국제해양법상 영해가 3해리에서 12해리로 확대되면서 생긴 홍도·마라도까지 추가하면서 국제사회에 우리 논리를 설득해야 한다. 차제에 ICAO와 연결시켜 ADIZ 관련 국제협의체를 한국 주도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이="ICAO에 우리의 FIR과 KADIZ의 불일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 우리가 KADIZ에 이어도를 포함시키면 일본이 JADIZ에 독도를 포함할 우려는 없나.

 이="일본이 독도까지 JADIZ에 넣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빌미를 줄 수는 있다.”

 - CADIZ에 미국은 강하게 반응하다 최근에는 다소 신중해졌는데.

 송="CADIZ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승인한 시진핑 시대 새로운 외교안보전략의 큰 틀이다. 한·미·일이 반대한다고 결코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미·중은 서로 군사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은 CADIZ를 인정하지 않고 말로는 강경해도 융통성을 발휘할 것이다. 중국도 미국 B- 52의 출격을 탐지·식별해 CADIZ의 실효적 관리 능력을 과시하면서도 실제 요격(근접 추적)은 하지 않았다.”

 이="미국은 B- 52를 출격시키고도 자국 민항기에는 중국에 비행계획서를 내도록 했다. 절충과 합의의 취지가 감지된다.”

 - CADIZ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송="CADIZ를 놓고 미·중 어느 한쪽 편을 들고 말고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CADIZ를 KADIZ 확대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이="누구도 무력 충돌을 바라지 않지만 우발적 충돌 우려는 있다. 이어도가 한·중·일 3국의 ADIZ에 모두 포함될 경우 이어도 상공의 ADIZ는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

 - 제주도 남쪽 바다와 하늘을 어떻게 지킬까.

 송="정치 이념 때문에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를 할 때가 아니다. 이어도가 포함된 KADIZ 아래의 넓은 바다에서 장기간 작전할 배가 필요하다. 이지스함을 3척에서 6척으로 늘리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이="현재 전투기가 발진하는 대구·광주 공항은 이어도와 너무 멀다. 내년에 공중급유기 기종을 선정하지만 공중급유기도 한계가 있다. 제주도에서 항공작전 수행 능력이 필요한 만큼 포화상태인 제주국제공항을 확장할 때 민·군이 공동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글=장세정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EZ(배타적 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나라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바다. 영해보다 넓은 개념이다. 외국 선박이 단순히 지나가는 것은 무방하지만 고기를 잡거나 해양자원을 채취하지는 못한다. 자국 연안에서 최대 200해리(약 370㎞)까지 선포할 수 있다.

◆FIR(비행정보구역·Flight Information Region)=항공기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배정한 하늘. 각국의 항공 관제소는 관할 구역을 지나가는 모든 항공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항공기 사고가 생기면 수색과 구조에 나설 의무도 있다.

◆ADIZ(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영토와 영해에 가까이 다가오는 항공기의 정체를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해 설정한 구역. 각국 공군은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항공기에 대응해 영토와 영해를 지키려면 상당히 먼 거리에서부터 항공기의 정체와 의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각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영공의 바깥에 위치하기 때문에 국제법적 효력에 대해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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