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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자가 문학평론 집필「30년대 농촌과 심훈 문학」|연세대 홍이섭 박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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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학자 홍이섭 박사(연세대·국사)가 문학평론을 집필, 문단의 화제가 되고 있다.
홍 박사는 최근 간행된「창작과 비평」지(가을호)에서『30년대 초의 농촌과 심훈 문학-「상록수」를 중심으로』를 발표, 사학가로서의 독특한 문학평론을 시도했다.
일본식민지시대의 우리 나라 대표적인 농촌문학이 이광수의『흙』과 심훈의『상록수』등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지만 홍 교수는『상록수』를 중심으로 20년대와 30년대 초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심훈 문학의 변천을 살피고 있다.
1920년대 일제는 미곡강제증산과 약탈로 농촌은 피폐했다. 농촌은 물론 영세공업의 위축으로 이농현상과 실업이 증가됐는데 이때 조선사람들은 스스로 농민을 다시 농촌으로 복귀시킴으로써 농민들이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보고 귀 농 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심훈은 이 시대의 가장 이상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상록수」를 내놓았다.
홍 교수는 23년∼28년 심훈이 영화·연극에 골몰했던 시기와 30∼35년의 문학작품제작시대를 전후 두시기로 나누고 그의「민족에의 향념」이란 기본정신이 작가로서 전개되는 과정에서 총독부검열과 대립될 때 끝으로 찾은 작품세계가 농촌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1930년 신문에 연재됐던 소설『동방의 애인』에서 그는 자기가 중국유학, 3·1운동, 일 헌병에 잡혀 겪은 고초 등 민족투쟁의 경험을 집약적으로 서술하려 했었다. 그러나 결국 일제검열에서 걸려 이 작품은 중단됐다.
심훈이 33년에 쓴『영원의 미소』나 35년의「상록수」는 흔히 농촌소설 농촌계몽소설로 일반적인 문학평론가들이 규정하는데 대해 홍 교수는 이들이 농촌을 소재로 했지만 춘원의 『흙』등이 시대풍조를 따른 작품이라면 심훈의 것은 의식에 있어 구분돼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당 진에 옮겨 산 심훈은 작품세계를 농촌으로 했으나 식민지적 현실을 탈피하지 못했으며 농촌에서 실제로 당면한 식민지적 상황이 문제가 됐던 것이다.
흔히 문학사에서 도외시되기 일쑤인 심훈의『동방의 애인』과『불사조』가 비록 일제에 의해 금압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심훈의 면목이 나타나는 작품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불사조』를 쓰면서 심훈은『이제야 비로소 습작기에 들어간다』고 얘기했지만 이 작품을 쓰던 시기에 그는 민족주의문학과「프로」문학에 대해 똑같이 비판을 가했던 것이다.
이들 두 30년대 초의 작품이 일경에 의해 탄압됨으로써 현실비판이 가능한 다른 현실인 농촌문제를 다루는 데로 심훈의 작품세계는 나가게 됐던 것이다.
『상록수』『영원의 미소』『직녀성』이 모두 농촌에서 이루어진 작품이며 피 식민지 인으로서 작품발표가 가능했던 종류의 작품이었다.
홍 교수는 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짓고 있다.
『심훈이 농촌계몽, 각성을 생각하면서 농촌을 묘사하려던 여러 작품들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그가 인식하고 체험한 역사적 실제를 1930넌 대의 전반기를 이해하는 역사적인 식으로 이끌어들여 볼 수 있지 않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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