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민의 영웅」「랠프·네이더」|「무능 의회」에 공격의 화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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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불량 식료품에서 자동차 공해, 대기업과 권력의 야합에 이르기까지 적수를 가리지 않고 소비자 시민에 부당한 피해를 주는 온갖 부정 부패의 고발에 앞장서 온 미국의 「시민 영웅」, 「랠프·네이더」가 이번에는 미 의회와 의원들의 『기막힌 무능』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폭로 운동을 벌이기 시작. 「워싱턴」 정가를 긴장시키고 있다.
1천여명의 젊은 변호사와 법학도들로 구성된 이른바 『「네이더」 돌격대』가 20만「달러」를 들여 조사한 결과를 모은 『미 정부 백과 사전』 (전 20권 예정) 중 제1권 『누가 의회를 움직이나』가 곧 발간된다. 이 책에서 「네이더」는 의회를 가리켜 『대통령의 시녀로 전락, 입법 기능은 팽개치고 대기업으로부터는 뇌물이나 받는 무능 집단』으로 혹평하고 나섰다.
「맥거번」이 「닉슨」 행정부를 『미 역사상 가장 부패한 정권』으로 규정한 것과 때를 같이하여 「네이더」는 이 책에서 의회의 무능뿐 아니라 「닉슨」을 『공무에 무관심한 미국 최대의 악』이라고 공격했다.
그 일례로서 「네이더」는 「닉슨」이 의회의 승인 없이 재임 기간 중 총 4천건의 조약을 외국과 체결하고 의회의 존재에는 아랑곳없이 그가 싫어하는 부분에는 예산 지출을 거부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외교 정책을 말아 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네이더」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헌정은 위기에 놓여 있으며 의회는 명목상의 존재에 불과한 이해 추구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 위기를 타파하는 길은 의원들이 유권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압력을 가하여 의회의 기능을 회복케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목적이 미국의 3권 분립 제도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닉슨」의 무제한 권력 행사에 의회가 정상적으로 견제 기능을 회복하도록 질타하는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1차 대전 직후 「윌슨」 대통령이 제안한 국제 연맹 조약을 의회가 부결시킨 것을 가장 역사적인 상원 기능의 예라고 지적하고 「닉슨」이나 「윌슨」 행정부가 의회의 여러 가지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월남전을 계속한 것은 무능한 의회의 단적인 예라고 힐난했다.
또 「네이더」는 이번에 발표할 저서에 이어 『의회 주요 분과위 연구』『의회의 기능』『시민과 의회』『현직 의원 신상 명세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특히 『의원 신상 명세서』에는 『네이더」 돌격대』가 일일이 의원들과 면담, 의정 생활의 잘못을 가차없이 폭로할 예정이어서 밑이 구린 의원들은 벌써부터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미 30명과의 「인터뷰」를 마친 「네이더」 진영의 면담 목적이 알려지자 의원들은 협조 파와 비협조 파로 갈라졌다. 비협조 파들이 떠는 이유는 「라이벌」 정치인들이 그들의 비위 사실을 선거전에 이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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