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엿보기] 재건축 수주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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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수주하지 않으려니 불안하고.수주해도 시공사로 최종 확정될지 의문이고…."

주택업체 재건축 수주 담당자들의 하소연이다.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고층아파트 재건축 시공사로 결정된 D사 관계자는 "재건축추진위원회가 6월말까지 조합설립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추진위측이 6월말까지 조합설립인가를 받지 못하면 이번 수주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처지다.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그 이전에 조합설립인가를 받지 못한 재건축단지는 종전에 시공자를 선정했더라도 사업승인 후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시공사를 다시 정하도록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요즘 건설업계가 재건축아파트 수주에 열을 올리면서도 내부로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시공사를 뽑겠다는 재건축단지 가운데 조합설립 전단계인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곳이 적지 않다. 6월말까지 조합설립인가를 받지 못하면 그동안 수주활동에 들어간 수십억원대의 홍보비와 조합운영비 등을 날릴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재건축 시공권을 따내려는 건설업체들의 노력은 여전하다. 재건축추진위원회 측은 너도나도 시공자를 뽑고 있다. 시공사가 선정되면 값이 뛰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조합설립 인가를 받지 않고 시공사를 선정한 재건축아파트는 서울에서만 59개 단지 7만여가구에 달한다. 이중 26개 단지는 지난해 8월 당국이 재건축 시공사 선정요건을 강화한다고 발표한 이후 시공자를 뽑았다.

이에 대해 업체 관계자들은 "리스크를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수주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건설경기 위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업체간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가지 희망은 재건축조합 측이 이미 낙점한 업체를 버리겠느냐는 것. S사 임원은 "시공사의 직.간접적인 지원 없이는 조합 혼자서 자생할 수 없는 구조인데 기존 관계를 청산하는 게 쉽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재건축조합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업체를 시공자로 정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므로 업체들은 이래저래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재건축 전문가는 "무분별한 수주가 시공사 자신에게 굴레를 씌우는 격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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