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산불] 강풍+도깨비 바람 '양강지풍'이 주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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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불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매년 봄철만 되면 강원도 양양과 강릉 사이에서 부는 바람이다. 현지 주민들은 양양과 강릉 두 지역의 머리글자를 따 이른바 '양강지풍(襄江之風)'이라고 부른다.

초속 15m 이상의 강한 바람에다 풍향마저 일정치 않아 조그마한 불씨가 큰불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원지방기상청에 따르면 5일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을 기준으로 양양 27.5m, 강릉 18.5m를 기록했다.

이 정도의 바람이면 신호등이 흔들리고 사람이 제대로 서있기 힘든 상태를 말한다. 소방 헬기와 진화대가 화재 현장에 근접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 때에는 양강지풍으로 최대 순간 풍속이 초속 27m에 이르렀으며, 1999년 2월 28일 속초 산불 때도 초속 22.4m의 강풍이 몰아쳤다.

2000년 4월 강원도 고성.강릉.동해.삼척, 경북 울진 등지에 서울 여의도 면적의 78배(2만3448㏊)에 달하는 울창한 산림이 숯더미로 변하는 사상 초유의 화재가 발생한 것도 양강지풍 때문이다.

백두대간을 서쪽에 두고 있는 지리적인 여건도 산불의 주요 원인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이 산세가 높은 백두대간을 넘으면서 물기가 없는 고온건조한 바람으로 변하는 푄(높새) 현상 때문에 땅이 금방 말라붙어 산불에 취약하다.

동해안 산림 대부분에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 것도 산불을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송진은 불이 나면 기름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 가파른 산맥 지형 때문에 불이 나도 소방 인력이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어 조기 진화에 실패하면 순식간에 큰불로 번지게 된다.

강원기상청 관계자는 "봄철 건조한 산악 지역에서 마른 번개나 나무 부딪침으로 자연 발화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작은 실화(失火)가 강원도 양양.간성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만나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양양=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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