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제 불상정 가결의 의미|73년 유엔총회를 전망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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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유엔본부=김영희 특파원】유엔총회가 운영위에서 넘어온『한국문제토의 연기 안』을 최종적으로 승인함으로써 한국의 금년도「유엔」외교는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운영위의 표결에서 영국이 제안한 연기 안이 16대7로 통과된 것은 동·서 진영이 맞붙은 문제가 「유엔」사상 최초로「더블·스코어」를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이「유엔」전략을 재고함에 심리적 여유를 줄지는 모르나 한반도주변의 국제정세와 필경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한국문제토의의 원천적 봉쇄는 금년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지금 예상대로 내년에 동서독이「유엔」에 동시 가입하게 된다면 한국문제의 상정저지는 결정적으로 벽에 부딪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년「유엔」외교의 승리는 중공의 유엔가입을 계기로 미-소 양극체제가 막을 내리고 미국의 영향력이 심각한 퇴조를 보인 반면, 중공이 새「보스」의 하나로 등장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한층 돋보인다.
유엔자체를 놓고 볼 때 한국문제를 둘러싼 정세는 한국에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주장이 관철된 가장 큰 원인은 남북회담 때문이다.
많은「유엔」회원국들이 그들의 외교노선이나 운영위 또는 총회에서의 투표행위와 관계없이 한국문제의 토의를 연기해야한다는데 동의했다는 사실이 이것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남-북 협상이외에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김 장관이 언급한 것처럼 공산 측의 발언에 종전과 달리 한국을 비방하는 언사가 하나도 없었으며 소련을 비롯한 동구공산 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한국 측에서 만나자는 제의에 거절을 한 나라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이 최근 공산권에 대한 접근시도, 신축성 있는 비동맹외교를 적극화 한데 기인한 것 보인다.
이것은 한국이「유엔」외교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전체 외교가「유엔」외교를 지배하도록 외교자세를 정상화 한데 큰 수확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고위외교관의 말에 의하면 중공은 중동「아프리카」지역에 약 3억「달러」의 경원을 제공하는데 금년 한국문제에 대해 수원 국들에 많은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따라서 어떤 나라는 한국대표에게 그들의 난처한 입장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한다. 소련 역시 마찬가지의 노력을 기울었으나 결국 한국이 승리한 것은 유연성 있는 외교의 결과라고 하겠다.
한편 이번「프랑스」의 태도는 암시하는바가 많다.「프랑스」가 이번「유엔」총회에서 한국과 외교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로서는 유일하게 한국을 지지하지 않고 홀로 기권했다. 외교관들은 이것은 지난 7월에 있었던「슈만」외상의 북경방문결과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일반화해서 생각해볼 때 중공은 한반도에서「유엔」의 깃발을 내리고 미군을 철수시키는데 직접의 이해관계를 갖고있으며, 따라서 중공과의 외교관계를 새로이 수립하거나, 혹은 현존관계를 개선코자하는 나라는 앞으로 속속「프랑스」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전망을 할 때 이 사실은 주목을 요한다고 할 것이다.
이번「유엔」총회와 운영위에서의 예상 밖의 표 차는 김용식 외무장관의 말처럼 내년에도 불 상정방안을「유엔」대책으로 재고할 수 있게 할지 모르나 그렇게 낙관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외무부는 당초 작년부터 시작된 토의연기 안은 금년을 마지막으로 하여 앞으로 좀더 현실적이고 전향적인 방법을 모색할 방침이었다.
김 장관의 원천봉쇄 안 채택 고려발언은 최종방침을 표명한 것은 아니나 이번 표결결과에 너무 안도하지 않나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내년에 동·서독이 동시에「유엔」에 가입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세계의 해빙·남-북 대화·국제정치의 다극화란 현실에 부응하는 새로운 「유엔」접근정책이 과감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 같다.
김 장관이 기자회견에서「유엔」철수에는 강경하면서도「언커크」문제에는 융통성을 보인 점은 주목할만하다. 공산 측도「언커크」「해체」에서「정지」로 목표를 완화한 사실을 감안하면 어떤「콘센서스」가 이뤄질 가능성이 없지도 않기 때문이다.
유엔총회 표결에서 작년보다 표 차가 5표 줄었다는 사실은 지난 1년간의 국제정세의 변화에 비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우리를 지지했던「프랑스」가 기권으로 넘어간 이후「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등 북구제국이 기권에서 반대로, 찬성에서 기권으로 한 단계씩 후퇴한 사실은 우려할만한 변화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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