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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고택 현판에 숨은 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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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술사학자인 최순우 선생은 아름다운 우리 것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퍼뜨린 분이다. 젊은 시절부터 선생의 글에 감동했던 나는 그분의 전집을 1992년에 묶어낸 바 있다. 그것은 곧 내가 출판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 선생이 생전에 살았던 한옥이 서울 성북동에 있다. 이 집은 한때 개발업자에게 팔려 헐릴 뻔한 위기에 몰렸다. 문화계 인사들이 나선 덕분에 용케 살아남았는데 나도 그때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 이렇게 보면 선생과 나의 인연이 퍽 오래가는 셈이다. 지금 이 집은 말끔히 복원돼 일반인도 구경할 수 있다. 정감이 있는 공간이라서 그런지 찾는 발걸음이 잦다고 한다.

집은 기역 자와 니은 자를 이은 미음 자 꼴이다. 그렇다고 고대광실은 아니다. 안마당과 뒤뜰에는 감나무와 산수유.대나무가 자란다. 선생은 평생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빠져 지낸 분답게 당신 살 집을 크고 화려하게 가꾸려는 욕심은 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집안에 으스대는 치장이 아예 없다. 정작 호사는 다른 데서 부렸다. 내가 보건대 처마 밑에 잘 차려놓은 현판들이 그것이다. 단원 김홍도가 쓴 '오수헌(午睡軒)'은 나른한 이름이다. 추사 김정희가 쓴 '매심사(梅心舍)'는 속 깊은 이름이다. 이름에 섣부른 맛이 없으니 집주인의 멋이 오히려 푸지다. 흔히 선생을 가리켜 '아름다운 것은 그다운 것이고 그다운 것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허튼 소리가 아닌 것이 현판 하나 고르는 데도 그의 운치가 여실하다.

내가 심상치 않게 여긴 것은 선생이 직접 써서 붙인 현판이다. 예전에 집필실로 쓰던 곳에 걸려 있는데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이라 돼 있다. '문을 닫으면 이곳이 깊은 산중'이란다. 선생의 필체는 풋풋하다. 세상에는 누린내나 비린내를 풍기는 글씨가 많다. 그에 비하면 선생의 글씨는 고랭지 채소 같다. 필체보다는 그 뜻이 중중첩첩이라서 마음에 오래 남는다. 지금 집도 호젓하지만 선생이 이곳에 살던 시절은 절간처럼 고요했을 것이다. 그러니 '도심의 별서(別墅)'라 불러도 허풍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워낙 조용하기에 '심산'으로 칭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다음으로 몸은 저잣거리에 있어도 마음은 탈속하다는 자부심이 그 글귀에 보인다. 사실 성북동이 조용해본들 한갓진 시골만이야 하겠는가. 그래서 현판에는 시은(市隱), 곧 '참된 은자는 시정에 숨는다'는 속뜻이 있을 성싶다. 어느 곳에 살든 마음을 열고 닫기에 달렸다는 얘기다. 달리 말하면 처신의 지혜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남는다. 하필이면 왜 집필실 앞에 이런 현판을 내다 걸었을까. 이 내용은 과연 글 쓰는 행위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곰곰이 따져보다 단서가 될 만한 시 한 수를 찾아냈다. 송나라 양만리가 읊은 시다. '강산의 정취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아/비가 오든 개이든 하나같이 신기하다네/문 닫고 시구 찾는 건 시 짓는 법 아니지/길을 나서면 저절로 시가 되는 것을' 방안에 처박혀 이런 구(句), 저런 절(節) 꿰맞추려고 끙끙대는 짓은 시인의 옳은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릇 글감은 자연에 널려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선생의 현판은 거꾸로 말한다. 문만 닫아걸면 깊은 산인데 새삼 나설 필요가 뭐 있느냐는 대꾸다. 이것이 곧 '흉중일기(胸中逸氣)'가 아니고 무엇이랴.

'두문불출'은 스러진 고려 왕조의 충신들이 보인 의지이지만 글 쓰는 운명을 지고 태어난 자의 작심이기도 하다. 문을 닫아건다 함은 무리를 떠나 고립을 자초한다는 의미다. 말하기도 쑥스럽지만 예술은 고독의 산물이다. 떼를 지으면 익숙해지게 마련이고 익숙해지면 부패하는 것이 세상의 관습이다. 이래서야 예술이 될 턱이 없다. 선생은 산중에 자신을 유폐시킨 채 명주실보다 아름다운 문장을 뽑아냈다. 헛되이 전해지는 이름이 없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